소비가 미덕처럼 여기던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다. 불과 십 수 년 전의 일이었다. 경제수지가 매년 상승곡선을 그려내고 주머니 사정이 좋아지면서 정부나 관련부처나 사회분위기 전체가 소비를 장려하는 입장이었고 조금은 여유를 부릴 만큼 국민의 마음이 넉넉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그 여유라는 것이 우리 국민 모두의 것은 아니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최저임금에 허덕이는 상황 속에서 그나마 조금씩 형편이 나아진 사람들이 누릴 수 있었던 넉넉함과 여유였다.
그 넉넉함과 여유는 소박하기 짝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예를 들자면、수명이 다된 흑백 TV를 컬러TV로 바꾼다든지 오래된 고물 전비밥솥을 보온겸용 전자 밥솥으로 바꾼다든지 하는、그런 정도가 아니었나 싶다
따라서 추석이나 명절 때가 되면 사과나 배、아니면 양말ㆍ손수건ㆍ조미료세트 등이 단골 선물 메뉴로 선택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같은 풍경은 크게 변질되긴 했지만 올 추석 같은 기현상은 우려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하고 있다.
백화점마다 넘치는 고가의 상품들이、그것도 사치성 호화 외제상품들이 추석선물로 선호되어 물건이 없어 못 팔 지경이었다는 것이다. 10만 원대를 넘어서는 「갈비세트」에서 20만원 아래로는 손조차 대기 힘든 「송이바구니세트」는 오히려 약과라는 얘기였다.
40~50만 원대를 넘나드는 외제 구두나 눈비비고 자리수를 세어 보아야하는 백만 원 단위의 고가품들도 추석선물로 팔려나갔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수출은 밑바닥을 헤매고 국가의 경제사정은 하양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얘기는 요즘 우리가 매일 접해야하는 빅뉴스중의 하나다. 임금은 올랐다 쳐도 뛰어오른 물가를 따라잡을 방도가 없는 현실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말조차 잊어야 할 정도로 우리 모두가 긴축을 모토로 삼아야할 형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치성 호화물품들을 겁도 없이 구매하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 오르는 물가、밑바닥을 맴도는 경제사정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사람들、또 이들의 과소비 작태를 부추기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개미처럼 일하고 땀 흘려 번 돈이라면 이렇게 물 쓰듯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제보다 더 오른 물가 앞에서 몇 번을 망설이며 돈을 쪼개야 하는 대다수 서민들의 상대적 빈곤감을 이들은 무섭게 여겨야 할 일이다. 재화를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재화를 값있게 사용하는 것을 더 큰 자유로、기쁨으로 생각하는 자세가 지금、우리에겐 절실히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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