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다드」시에 한 상인이 살고있었다. 그는 자기 하인을 시장에 보내어 필요한 물건을 사오게하였다. 그랬더니 한참뒤에 하인은 샛파란 얼굴로 떨면서 돌아와서 말하였다. 『주인이여, 방금 내가 시장에 갔더니 군중들 속에서 한 여인이 나의 옆구리를 찌릅더이다. 옆을 돌아보니 내 옆구리를 찌른 것은 바로 사신, 「죽음」이었습니다. 그는 소름이 끼치는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봅더이다. 자 이제 이야기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주인이여 빨리 당신의 말을 빌려 주십시오. 말을 타고 이 도시를 빠져나가 나의 이 운명을 피하렵니다. 나는「사마라」에 가면「죽음」이 나를 찾지 못할터니까요.』
상인은 하인에게 자기가 아끼던 그 준마를 내주었다. 하인은 그것을 타고 필사적으로 박차를 말 옆구리에 질렀다. 박차가 말의 육체에 깊숙히 파묻혀 박히는것 같았다. 말이 달릴 수 있는 속력의 극한을 다하여 하인은 일로「사마라」로 급행하고 있었다.
그때에 상인은 그에게 가서 항의하였다.
『당신은 왜 내 하인에게 오늘 아침에 그렇게 무서운 표정을 하였느냐?』고 「죽음」은 답하였다. 『그것은 내가 무서운 표정을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뜻밖의 일에 놀란 나의 표정이었다.
나는 그 이를 이곳「박다드」에서 만났기에 놀란 것이다. 실은 오늘 저녁에 나는 그와「사마라」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있던 것이기에』라고.
이상은 그 실감을 충분히 독자에게 전할 목적으로 조금 길에 인용하였으나「서머셋트 모음」의 희곡「쉐피이」의 한 구절이다. 피리와 칼과 황금과 신비의 별밤이 있는 이교의 땅의 박력, 그들의 성전의 일절을 읽은 느낌이다.
등줄기가 오싹하는 해결없는 공포가 거기에 있다.
「박다드」나「사마라」가 있는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운명」이다. 무수한「우연」들 속에 공존하면서 「운명」은 제 맘대로 누비고 다니다가 아무렇게나 정해버리면 그것이 곧「약속」이요 법률이다. 생명을 의탁하고 살 보람이 없는 세계다. 이 세계에 간절히 요망되는 것은 「정의」였다. 천리를 단숨에 달리는 준마가 아니었다. 그래서 오늘의 세계문명은 무법적인 저「운명」을 폐하고「정의」 를 그 제도위에 군림시킨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정의」는 어느새 변질하여「신이 없는」정의가 되어버린 후부터는 옛날의 「운명」못지않게 그 광난을 거듭하여 이제「파괴자」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렸다. 그 정의는「사람」에 입각치않고 수학적 계산과 보도 정보의「정의」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지금 큰소리로「박다드」의 무능한 주인을 비웃지 못할것이다. 『「사마라」로 가지마라. 나와 함께 머물면 너는 살고 나를 떠나면 너는 죽는다』고 하인에게 말했을 사람이 누구냐. 속수무책으로 하인에게 기껏해야「천리마」나 빌려주며 빨리 고속으로 부산이나 가보라고 했지 않겠는가. 주인이라는 그 이름 때문에 시장까지 가서 사신을 만났으나『너는 물러가라! 그는 내게 속한 자다』고 외칠 용기가 없다. 하물며『그를 대신하여 나를 너에게 준다!』고할「사랑」이 거기에 있을 수 없었다.
아아, 그러나 천만다행하게도 우리는「운명」과「우연」만이 지배하는 듯이 보이는 이 험악한 세계에 안타깝게도 눈으로는 뵈올 수 없으나 「무적의 강자」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것이다. 그는 동시에「눈물과 사랑」의 주인인 것이다. 그는 자기의 생신에 못을 박아 물 한모금주지 않고죽인 그 죄많은 하인들을 아직 한번도「살인자」라고 부른적이 없었다.
이 주인은 아직도 끝없이 범죄하는 그 하인들을 자기의「눈동자」처럼 소중하게 사랑하여 그들 하나하나의 호흡, 심장의 고동에 이르기까지를 아무에게도 맡길수 없어 친히 자기 손으로 직접 관리하는 것이다.
▲이번호부터는 외국어대 영문학 교수 박희영씨께서 본란을 맡아주시겠습니다.
<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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