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출옥하는 날.
기다리던 햇살이 찬란한게 쏟아지고 있었고 정녕 새아침은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어둠속에서 나오는 햇살은 재기를 밝혀주는지 찬란하고 아름답게 빛을 뿌렸습니다.
지난날 방황 속에 묻혀 내인생이 끝나는줄 알고 두려움에 떨며 들어온 이곳. 나는 마냥 감상에 젖어 모든걸 새로 찾을 각오를 마음속에 다짐했습니다.
『이젠 어떠한 굴욕과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뚫고나서며 굴복 시켜야지』
긴 시간을 방황속에 토해내던 그 슬픈 언어들과 지루한 시간을 바람에 실어타고 떠들던 어제-그러나 이제 나의 그 고된 방황도 거둘 시간이 닥쳐 왔습니다.
낙엽을 밟고 거닐던 추억도 햇살을 입고 나독던 후회도 이제는 거두고 새출발할 시간입니다.
찬란한 햇살이 나의 마음을 씻어가듯 나는 부푼가슴을 안고 그동안 감옥에서 일한 댓가 작업 상여금 1150원을 받아쥐었습니다. 그리고 하얀 15척 높은 담을 빠져나와 드르릉 하고 닫치는 철문을 바라보았습니다.
2년 2개월, 쓰라린 미련을 가슴깊이 간직한채 나는 태양을 바라보았습니다. 자유를 잃었던 어제와 밝은 태양이 솟아오르며 재기를 약속해주는 오늘을 깊이깊이 느끼며 교도소밖에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이젠 비극도 끝났습니다. 「죄많은 인간」「사회는 나를 어떻게 받아줄까」모든것이 변해있었습니다. 나는 마치 촌닭처럼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변한 바깥세상을 보며 김천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고속도로에 올라 달리는 창밖을 내다보니 들에는 나락을 세워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지금쯤 고향에도 타작을 할거라는 생각 또 아버님이 와계실까 하는 생각 그리고 동생들이 모두 와있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 등 나의 머리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자꾸 회전해갔습니다.
이윽고 버스는 김천에 도착했습니다. 기차를 갈아타고 또 몇시간 나는 청리역에 내려섰습니다. 고향 논에도 아직 타작은 안했습니다. 또 문득 눈에 뵈는 눈물고개, 나는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마루에 올라서서 『영순아! 정순아! 경순아!』하고 동생들 이름을 불러보았습니다.
그러나 대답이 있을리 없었습니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거리에서 오빠를 찾지 않는지? 만가지 생각을 다하며 이젠 만나면 헤어지지 말고 굳세게 살아보자고 울면서 소리쳤습니다.
고향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망설여지는 마음 나는 앞산에 올라가 집안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무런 변함이 없었습니다. 사랑방에는 할아버지가 앉아서 긴담뱃대를 빨고 계시고 마당엔 조그마한 어린애들이 둘이서 장난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며 난 직감적으로 조카들이란걸 알수 있었습니다. 어둠이 깔릴 무렵 나는 큰맘 먹고 대문을 밀고 집안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앞으로 서 인사를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한참 쳐다보실뿐 말이 없었습니다. 내가 상봉이라고 했을때 알겠다는듯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8년만에 만나보는 자신의 손자라고 생각해선지? 아니면 누구를 원망하는지?
뒤돌아서는 할아버지를 보며 방에 앉은 나는 「누가 왔느냐」고 묻는 눈먼 할머니를 보자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왜 울었는지, 왜 눈물이 나오는지도 몰랐습니다. 눈먼 할머니는 내 목소리를 듣고 내 손목을 더듬으며 함께 울으셨습니다. 할머니는 『어디서 고생하다 왔느냐』는 등 여러가지를 물으시며 울고 계시고 멀찌막히 앉으신 할아버지는 나를 꾸짖었습니다. 조금 있으니 과수원에서 일하던 순렬누나와 잔치집에 가셨다던 아버지가 돌아오셨습니다. 내가 왔다니 모두둘 반가히 맞아주고 또 고생했다고 하면 집에서 같이 살자고 했습니다.
나를 보시는 아버님의 얼굴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반가와해 주셨습니다. 애비가 부족한 탓으로 어린것들이 고생한다고 하시며 우시는 아버지를 따라 나도 한참 흐느껴 울었습니다.
옛날보다 수척해지신 아버지 어머니와 동생들을 생각하면 마냥 원망하고 싶었지만 모든 것을 용서하라고 하시는 지금의 아버지를 보니 오히려 불쌍한 생각이 들고 또 그동안 우리들을 생각하며 가슴 아파 하셨으리라 하고 생각하니 나는 지난 날이 원망스럽고 짖궂은 운명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날 저녁 고향 친구들이 내가 왔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방안에 들어와 함께 놀면서 그동안 어디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대구서 카바레 종업원으로 있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고향 친구들은 내가 교도소에 있었다는 걸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밤이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다가고 큰어머니는 그날 밤 들어오시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와 나는 한방에서 자리를 깔고 누웠습니다. 정말 할말은 없고 가슴만 답답했습니다. 아버지 역시 아무런 말씀없고 깊어가는 고향집의 밤, 이불을 머리위까지 덮어쓴 나는 끝내 오지 않는 동생들 얼굴을 그리며 마음의 실망을 잠으로 잊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고향집 농촌의 하루일과가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일찍 일어나 소마굿간으로 가서 소죽을 끓였습니다. 그리고 지저분한 마굿간을 청소하고 앞냇가로 가서 세수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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