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회 이후로 한국교회에서도 대화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교황청과 각국 교회와의 대화 주교와 사제나 일반 신자들과의 대화 신부와 신자간의 대화 나아가서 교회와 사회와의 대화를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대화해야 된다는 당위성만을 일방통행격으로 주장할 다름이지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겠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가 오랫동안 상명하복의 습성에 젖어있기 때문인지 상하의 대화에 대해서는 많은 욕구불만을 표명하면서도 횡적인 대화 즉 동료간의 대화에 대해서는 그 필요성을 절감하지 않는듯 하다.
9월 30일부터「로마」에서는 세계 주교대의원 회의가 개최되고 그 의제중의 하나로 사제직이 거론되어있고 각국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사제들 자신의 연구와 일반의 여론이 형성되어가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이 문제를 공적으로 제기하여 성직자들의 토론과 연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중대한 과제를 앞에 두고서도 한국의 교회 특히 당사자인 성직자들의 논의가 활발하지 못함은 실로 유감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시기적으로 이런 문제를 공식화하여 사제들의 연구에 붙인 것이 너무 늦었다는 점은 주교단에서도 시인해야 될 줄 안다. 그러나 아쉬운대로 이런 문제가 주어졌다면 성직자들은 다른 사소한 불편을 극복하고 이 문제를 검토하고 서로의 충분한 담화를 통하여 한국 성직자들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해야 될 것이 아니겠는가.
몇몇 교구에서는 신부회합에서 토의된 바도 있으나 또 다른 교구들은 그럴듯한 핑계로 교구수준에서의 공적 토의도 없었고 9월 3일에는 전국 교구 대표들의 토의가 있었으나 이 정도의 노력은 과제의 중요함에 비추어 너무나 미흡한것 같다. 형식적이고 피상적인 과정을 거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공의회 이후로 주교의 위치와 평신자의 위치는 공고하고 분명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향상된 것 같은데 신부들의 위치는 더욱 희미해지고 무력하여진 인상을 받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주 구체적으로, 노골적으로 말해서 교회 활동의 성패는 일선에서 활약하는 신부의 노력여하에 달렸다는 것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그렇다면 시기적으로 미묘한 처지에 있는 오늘의 성직자 특히 신부들은 그들 스스로가 분발하여 자신들의 처지를 명백히 하기 위하여 성실한 활동과 겸하여 그들의 의사를 대화에 의하여 조정하고 집약하고 천명하는 노력을 배가해야 될것이다.
많은 신부들은 교구나 주교나 신자들이 신부들에게 어떻게 해주기를 기대하고 그 기대가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지만 동료 신부가 다른 신부에게 해야할 것과 할 수 있는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교회가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수있는지 묻기만 하지말고 신부들이 교회를 위하여 무엇을 더 기여할수 있을지 물어야 하지 않을까.
교회와 사회와의 대화나 교회안의 대화를 논하려면 먼저 성직자 상호간의 대화를 논해야 되겠다.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성직자 사이에 대화가 불충분하다. 교구와 교구의 장벽은 물론이고 본당과 본당사이의 장벽이나 각 사목 분야가의 장벽은 너무나 높다. 거기에는 제도적인 제약도 많지만 실무자 사이의 대화의 결여에 기인하는 인위적인 제약도 허다하다.
천정을 향하여 탄식하는 것이나 몇사람이 모여서 울분을 토하는 것이 대화가 아니니 공식적인 사제위원회 같은 기구가 더 활발하게 움직일뿐 아니라 그 이전에 비공식적인 진지한 대화들이 오고가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성직자 사이에도 대화가 부실한 처지에서 성직자들과 신자들의 대화가 원활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많은 지방에서 대화없는 사목 행정 때문에 열의있고 순박한 신자들이 그들의 사도직 활동에 있어서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만일에도 분수를 넘어서 좌충우돌하는 신자가 있다면 성직자들은 설득력있는 대화를 통해서 그들의 본연의 임무에 성실하도록 인도할 것이지 성과 열이 위축되도록 하여서는 진정한 사목이 아닐것이다.
이 시점에서 한국의 모든 성직자들은 공의회후 6년동안의 교회안의 대화의 자세를 재검토하고 자기의 의사를 타인에게 강요하기 전에 타인의 의사를 성의있게 듣는 훈련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결심해야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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