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가 4일 드디어 개막된다.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를 주제로 평화의 상징적 인물인 프란치스꼬 성인을 기리는 「평화의 날」행사를 선두로 5일 「감사의 날」, 6일 「회심의 날」, 7일 「일치의 날」, 8일 「축제의 날」로 5일간의 일정이 진행된다.
이 5일 동안에는 그날의 주제에 맞는 18가지의 각종 강연회, 심포지엄, 문화행사 등이 베풀어지며 본대회는 8일 여의도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주례하는 장엄미사로 대단원의 막이 내리도록 돼 있다.
전세계 10억 가톨릭신자들이 성체를 중심으로 일치와 친교와 사랑을 재확인하고 새롭게 다짐하게 될 이번 대회에는 교황성하를 비롯 70여명의 고위성직자들과 1백 개국에서 7천명이 넘는 외국인들이 참가할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특히 성체대회의 절정인 8일의 교황성하 집전 장엄미사에는 최소한 60만 명 이상의 신자들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성체대회는 가히 가톨릭교회 최대의 축제 중의 축제가 될 것이 틀림없다고 하겠다.
개막일을 목전에 두고 있는 한국교회, 그중에서도 주최측인 서울대교구의 준비관계자들은 그야말로 눈코뜰새도 없이 여념이 없을 줄 안다. 그리고 대회에 참가하려는 전국의 신자들은 벌써부터 흥분과 기쁨에 들떠 밤잠을 설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교황성하를, 비록 멀리서나마 직접 다시 뵈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며 동시에 한국교회사상 처음으로 세계 각국 가톨릭신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역사적인 대회에 참가한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자제하기 어렵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한 40년 이상 단절돼온 북한신자들과 감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더욱 마음을 부채질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이러한 만남들은 참으로 뜻 깊고 소중하며 기다려지는 것이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아마 이러한 만남들만으로도 이번 대회는 이미 값어치가 충분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보다 더 근본적으로 성체대회자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대회가 제시하는 실천사항을 숙지하고 실행에 옮기는 일이 한층 시급하고 중대함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제44차 세계성체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도록 결정된 것은 지난86년 3월14일이었다. 서울이 대회장소로 결정된 배경은 한국교회가 선교면에서나 성장면에서 두드러질 뿐 아니라 한국의 현실이 이념적으로는 남ㆍ북으로 나누어져있고 빈부의 격차로 동ㆍ서가 갈라져있는 상태에서 상호불신과 갈등을 빚고 있어 이는 평화를 갈망하는 현세계의 축소판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한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곧 교회적으로 뿐 아니라 사회 현실적으로 평화정착이 강력히 요구되는 세계의 한복판에서 바로 평화의 원천이며 모델인 성체를 통해 진정한 평화를 보여주고 일깨워주며 그 실현을 다함께 추구해 나가자는 결의대회가 바로 성체대회라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성체대회가 성대하고 화려한 행사 그 자체로서 끝나버린다면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 대회가 지금까지 수없이 준비하고 계획한 일들을 총정리하면서 그 대회를 기점으로 하나씩 단계적으로 실행에 옮겨가는 계기가 돼야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두 가지 큰 행사 즉 조선교구설정 1백50주년과 한국교회 창립 2백주년 행사가 내실 없이 화려한 겉치레 행사로만 끝나버렸다는 자아비판을 거듭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지난날의 잘못을 또다시 되풀이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서울에서 세계성체대회개최가 결정된 후 3년 6개월 동안 우리는 바로 이런 면에서 많은 반성과 함께 새로운 시도와 노력들을 기울여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동안 상당한 성과도 거두고 있으며 우리의 노력여하에 따라 더 많은 결실을 거둘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내다보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현실 속에 내재하는 분열과 불화와 갈등을 해소하고 이 땅에 진정한 그리스도의 평화를 심기위해 「한마음 한 몸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오고 있다.
우리의 이웃과 함께 가진 바를 나눔으로써 평화를 이룩하려는 이 운동은 헌미ㆍ헌혈ㆍ입양 및 결연 그리고 신체의 장기를 기증하는 구체적 행동을 통해 계속돼오고 있다.
한편이 굶주려 주지 않고 평화가 이룩될 수 없으며 피가 모자라 죽어가는 환자를 내버려둔다면 평화는 외침만 요란할 것이다. 그리고 부모의 손을 떠난 기ㆍ미아에게는 보금자리가 주어져야할 것이다. 비록 자신의 사후에 이루어질 일이지만 생명을 지탱해야 할 사람에게 장기를 제공해주는 일은 숭고한 사랑이 전제된 차원 높은 평화를 구축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가시적이고 물질적인 나눔을 통한 평화달성 외에도 마음과 마음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은 더한층 값어치 있는 일일지 모른다. 사상과 이념의 차이, 인식과 견해의 차이로 빚어지는 수많은 갈등과 분열은 결코 쉽사리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팔짱만 끼고 좌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만큼 그 일이 가치 있고 소중할수록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은 배가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들을 놓고 볼 때 성체대회를 계기로 우리 각자가 또한 한국교회가 해결해나가지 않으면 안 될 중대사들은 산적해있다 할 것이다. 어쩌면 이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혹자는 이번 성체대회가 한국교회를 세계에 널리 소개하고 알리는 계기가 돼야한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보다 많은 신자들이 성체대회에 참여하고 대회자체가 성공적으로 치러져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조금도 틀린 말들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깊이 또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일은 성체의 삶을 사는 일일 것이다. 자신과 가정과 이웃 속에서 쉼 없이 그 생활이 이어져야할 것이다. 성체와 같은 삶이 없는 곳에 나눔도 평화도 무용지물로 치부되고 말 것이다.
참으로 의의 깊고 영광스런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가 한국교회 다시 태어남의 시금석이 될 것을 두 손 모아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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