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역사적이고 장엄하며 거룩한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가 8일 여의도 광장에서의 교황성하 장엄미사로 5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온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정착되기를 염원하는 뜻에서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를 대주제로 세계 1백여 개 국으로부터 참가한 7천여 외국신자들과 한국신도 60만 명 이상이 참례한 가운데 봉헌된 이날 미사는 가톨릭교회가 성체를 중심으로 하나로 일치됨을 극명하게 보여준 축제 중의 축제요, 쾌거중의 쾌거였다.
성체대회는 피부색과 언어가 다르고 국적과 성별, 연령이 서로 달라도 모든 이가 성체 안에서 한 형제ㆍ자매임을 실감 있게 보여주었다. 또한 성체대회는 성체의 위력이 그 얼마나 엄청난 것이며, 이로 인해 이루어지는 친교와 일치의 모습이 그 얼마나 감동적이고 위대한 것인가를 꾸밈없이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환희와 감격과 감동으로 혼합된 역사적 현장이었다.
이 같은 느낌은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이면 누구나 예외 없이 체험했을 것이며 텔레비전 생중계를 지켜본 전국 2백만 신자들도 가슴 뭉클한 감회와 벅찬 감격을 맛보았으리라 여겨진다.
이번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를 성공적으로, 완벽에 가깝게 치루어냄으로써 한국 천주교회는 다시 한 번 그 저력과 활력을 세계만방에 과시했다. 서울에서의 세계성체대회 개최가 결정된 후부터 8일 장엄미사로 대회전체를 마무리하기까지 3년 반 동안 주최측인 서울대교구가 기울인 온갖 정성과 희생과 봉사는 대회성공의 원동력이 되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대회준비 위원장이신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모든 실무위원ㆍ관계인ㆍ봉사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이제 서울에서의 세계성체대회가 모두 끝난 시점에서 한국천주교회는 앞으로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지를 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염려를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은 한국천주교회창립 2백주년 기념행사와 1백3위 시성식이 단순한 기념행사나 성인을 한꺼번에 많이 모시게 되었다는 자부심과 긍지만을 안겨준 채 역사 속으로 흘러가버렸다는 비판과 자기반성에 입각한 것이다.
2백주년 기념행사 때와 마찬가지로 한국교회는 영광스럽게도 교황성하를 두 번째로 모시고 화려하고 장엄한 세계성체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루어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과연 성체대회를 훌륭히 잘 치루었다는 자부심만으로 만족하고 교회야 어디로 흘러가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내버려둘 것인가? 아니면 지난날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다는 냉철한 판단과 강력한 의지로 성체대회 이후 한국교회의 진로를 명확히 설정, 그 길을 추진해 나갈 것인가?
결단은 한국교회 스스로가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교회사적으로도 중요한 2백주년과 세계성체대회를 성대히 거행했음에도 불구, 한국교회가 실리 면에서 알찬 소득이 없다면 행사만 잘 치루는 껍데기 교회로 전락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2백여 년의 일천한 역사를 가진 한국천주교회로서는 최초로 역사적이며 영광스럽게 거행한 이번 세계성체대회를 계기로 앞으로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로는 우리교회 2백50만 신자들부터 먼저 성찬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도록 되어야 하겠다는 점이다. 이번 성체대회를 통해 더욱 명백해졌듯이 성찬의 삶은 곧 나눔과 화해와 일치의 삶이며 참된 평화는 이 성찬의 삶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 성찬의 삶이 없을 때 참된 평화는 있을 수 없다.
곧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진정한 평화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달려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분의 참된 평화를 누리지 못할 때 누구에게도 그 평화를 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 교회내부를 들어다보면 성찬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다. 수많은 냉담ㆍ행불자들 비롯해 빈부ㆍ견해ㆍ지역 등의 차이로 교회공동체 내부에 장벽과 갈등과 불일치가 상존하고 있다. 이러한 장애요소들을 화해와 용서, 사랑으로 제거하지 못하는 한 한국교회는 언제까지나 진정한 성찬의 삶, 참된 그리스도의 평화를 살지도, 누리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특별히 이번 성체대회를 계기로 갖게 된 많은 학술강연, 심포지엄, 문화 및 예술 활동들이 한국교회 내부에 산재해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실마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 간절하다.
둘째로는 성체대회의 실천운동으로 전개해온 「한마음 한몸 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 운동은 성체대회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실천해 나간다는 방침이 이미 설정돼있는 줄 알고 있다. 이는 참으로 고무적인 일인 동시에 보다 폭넓은 적극적인 홍보와 참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 운동은 세말까지 우리교회가 쉼 없이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될 교회존립의 간간이 되는 운동임을 인식해야하겠다.
한 가지 부언하고자 하는 것은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외적인 나눔뿐 아니라 근본정신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꾸준한 교육과 계몽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한국교회는 이 땅에 「그리스도의 평화」를 뿌리내릴 수 있기 위해 모든 이와 협력해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평화는 개개인이나 특수집단의 노력만으로는 이룩되기 어렵다. 함께 사는 모든 이와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상부상조할 때라야 비로소 가능해질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고 소중한 남북통일문제 역시 우리 교회의 힘만으로는 결코 성취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면에서 이번 성체대회에서 국내 각 종교인들과 한자리에 모여 대화하고 공동으로 평화를 기원한 모임은 이제부터 우리교회가 시도해나가야 할 공동협력의 서곡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여겨진다.
물론 평화를 위한 공동협력의 길에는 어느 누구도 제외될 수는 없다. 비록 이념과 사상을 달리하는 사람들까지도 우리 교회는 배척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방법과 그 길만이 이번 서울 세계성체대회를 계기로 한국교회가 새롭게 태어나고 3백년 대를 향해 희망찬 전진과 도약을 기대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하겠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