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란치마 자락처럼 파아랗게 드리운 가을하늘 가을은 정녕 정화의 계적일게다. 물요란함이 극성을 떨치던 성하도 이제 점점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훅훅 숨막히던 더위, 덜덜거리는 버스속 뿌우연 공해의 매음 마치 근대문명의 비단이라도 거니는 듯 아름다웁기에 앞서 한없는 불안감과 초조감을 자아내게 하는 미니와 핫팬츠의 행렬과 앉음새 우리의 것들이 문화가 점점 퇴색되어가는 이 거리, 자기옷이 아닌 남의 옷을 뒤집어 쓰고 달뜨고 있는 이 요란함이 좀 기세가 꺾여야지…. 세상에 자기 것을 잃은 장태처럼 어색하고 우습광스러운 것이 있을까? 한마디로 _음과 착란, 야단스러운 계절이었다. 우리들과 사회의 온갖 병폐와 아픔이 이 _음과 착란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어딘지 정상이 아닌 불안한 거리속에서 매연으로 숨이 턱턱 막힐 때이면 나는 언제나 엉뚱하고 생겹스러운 생각에 잠기곤 한다. 드높이 맑게 개인 파아란 우리의 하늘과 초가지붕 위의 새하얀 박꽃과 가을 들길에 하늘거리는 들국화에 대한 향수를 것잡을 수 없는 괴벽스러운 생각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한국 가을의 명물이 아닐까?…. 소슬한 바람이 살랑대는 초가을 차츰 정리와 안정을 찾아야 되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정함과 고요함과 유현함에로 초대하는 계절인상 싶다.
「신窓林影開夜枕山泉響陰以復何求無言避心長」
이 글은 어릴때 나의 조부님 서재에 큼직한 먹글씨 명필의 족자, 지금은 남산이 한눈에 보이는 수녀원 서재에 걸어놓고 안으로 일어나는 바람을 다스릴때마다 음미해보는 시조의 일절, 참된 동양의 멋이 깃든 정화를 이 글귀에서 찾아본다.
새벽창에 수풀그림자가 열리고 밤에는 그윽한 산천향을 벼개삼을 수 있는 우리의 멋과 無言避心長만을 갈구하는 욕심을 떠난 혼령의 멋이 이 글귀에 다 들어있다면 케케묵은 옛이야기가 될까?
정함이 만행의 본향이라고 해는데…. 자기안에서부터 균형과 질서를 찾는 정화 고요로움의 맛은 정녕 가을의 곡일 게다. 그윽함과 가만함과 차분함과 가라앉음과 잔잔함과 잠심함과 수렴함과 마음의 침묵함 이런 상태는 바로 인간본연의 상태인데 이 근대문명이란 주제속에 고대문화처럼 진통스럽게 소멸된 먼 동화의 이야기처럼 그립고 그리워지는 언어들. 혼자 있음이 그립고 가만함과 잠잠함이 아쉽다. 어느 연극공연에서 히피족들의 대사에『이제 얼마 안있으면 맑은 공기와 푸른 하늘을 돈을 주고 살 시대가 올 거다』라고 하는 말, 얼마나 비참한 기계문명에 희생된 인간의 절규일까? 이것때문에 사상가들이 다같이『자연에로 돌아가라』고 외쳤던 것이 아닐까?
자기안 깊숙한 곳으로부터 자신을 다듬고 균형을 잡는 수행을 중용이라고 이르거니와 성심으로 다듬어진 분심없는 고요함, 맑게 개인 푸른하늘같은 유연咸과 잔잔함과 정함에 온갖 하늘스러운 선미과 축복이 샘솟지 않을수 있을까? 유학에서 말하는「도심」이나 불교의「열반적정」「선」의 경지가 이 안정에서 완성되어질 것 같고 하늘 바람이신 성신께서 일하시는 곳은 바로 이런 정한 마음의 성전 사욕을 말끔히 제올린 면형 무아의 제단, 맑은 심전 지성소일 게다.
우리 마음 안에 박꽃의 흰빛깔과 들국화의 향내음과 새파란 하늘의 장막안에 한 님을 맞이하고 싶은 계절 그분을 맞아 그윽한 정화를 향연처럼드리고 싶은 계절이다. 다가오는 가을은 정녕 가다듬고 잔잔하고 안정스러운 정화의 계절이라야 되겠다. 낙엽 깔린 오솔길을 차분히 밟으면서 스란치마자락처럼 드리운 푸른하늘 우러러 온갖 사안과 명상을 뿜어올려 정함에로, 고요함에로, 선에로, 유연함에로, 우리 자신들의 본연에로 돌아가야 하는 계절이라야 겠다. 그리하여 우리의 것들을 찾아 동일한 은총속에서 살아야되는 계절을 맞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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