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남녀노소들이 모여 묵묵히 탑을 쌓고 있었다. 그들은 이 어려운 작업을 주야겸행으로 강행하고 있었다.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 아득한 옛날에 죽어버렸기 때문에 탑의 착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다음 사람들도 또 그 다음도…또 그 다음도…모두 저 세상 고인들이 되어버린지 유구한 세월이 흘렀던 것이다.
종일가도 말 한마디 없이 일에만 숙중하는 이 군상들은 일견 「지」의 편린조차 찾아볼 수 없는 우인들의 거대한 집단같이도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대로의 확신하는 바가 있었다. 자기를 주장함이 인간 불행의 불씨였다고 단정한 그들은 일찍부터 자기 자신의 모습을 형제들의 마음 속에 비춰봄을 배웠던 것이다.
그래서「자기」를 포기한 사람들이었다. 모두 흰옷을 입은 그들은 자발적으로 제각기 자기 힘대로 돌을 하나 하나 들어올려 어깨에 메고 땀을 흘리며 탑으로 가서는 쌓아올리는 것이었다.
만약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각 개인들의 그림자뿐이었다. 언어를 잊어버린 이 백의의 군상들에게는 「신퇴」만이 그들의 생명이었다. 자기의 역량을 자만하는 자도 또 타인의 무력을 멸시하는 자도 이 백의의 사회에는 있을 수 없었다. 하물며 어떤 당파들 조직하여 야비하게 「특혜」를 추구하려는 도가가 어찌 여기에 공존할 수 있으라!
달밤에 보는 그 노동의 광량은 진정 눈물겨웠다. 땀에 젖은 흰옷들과 무거운 돌덩이들만이 간단없이 탑으로 탑으로 옮겨져가고 있었다. 그들의 힘의 연계가 정직하게 탑에서 집산되고 있었다. 낙화의 계절은 괴로웠다. 광풍에 휘날리는 무수한 화변들이 분분하게 춤추며 그들의 눈앞을 가리웠다. 다들 일종의 애상에 잠겨, 차라리 눈 오는 겨울보다 못하다고 느꼈다. 휴식을 거부한 그들에게 이리하여 자꾸만 사정없는 여름과 겨울이 지나갔다. 특히 흐르는 강물은 보기에 무서웠다. 그것은 탑의 완피이 령령함을 주야로 책망하는것 같았다. 그들은 물론 노고의 나날에 살고있지만 쾌락을 위주한 사회보다는, 그러나, 사는 보람이 있었다. 쾌락은 언제나 허위에 위로가 아니었던가.
일체의 허를 버리고 겸손한 자기로 돌아간 이들은 그 최선의 노력을 목적의 대결에 쏟았다. 숭고한 대결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그런 불행이 닥쳐올 줄은 몰랐다. 무서운 번개와 함께 하늘을 쪼개는듯 뢰성이 있더니 아아! 탑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공든 탑이 일조에 무너지는 광경은 차마 눈으로 볼수 없었다. 너무나 잔인하고 가혹한 운명이었다. 탑이 허물어지는 그 소리는 뇌성보다 더 처참하고 무서운 것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길게 끄는 비탄의 울음을 수반하고 있었다.
그 결과는 들 위에 돌하나 포개어 있지 않는 완전한 괴멸이었다. 아아, 그러나 이 백의의 군중들의 남기를 보라! 그들은 약자에게도 강자에게도 패북의 책임을 묻지않았다. 각자의 성실이 부족했던 탓으로 탑이 완성도 되기전에 자연의 폭력에 굴복한 것을 하늘에 부끄럽다고 느꼈다. 의연히 그들은 추호의 불평도 없이 또 다시 그 끝없는 건설에 착수하는 것이었다. 다시 맨 밑바닥 부터 또 돌을 깔고 하나하나 쌓아올려 탑을 모으고 있었다. 무너진 탑은, 그렇게 공이 들었건만 이미 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쌓고 어제도 쌓고, 또 내일도 쌓을 묵묵한 이들의 탑은, 어느날 반드시 하늘에 닿고야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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