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든 존경감과 무한히 좋다는 그런 감정상태에서 출발해, 깜직한 계집애는 사랑이란 감정을 배워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로 인한 가정 경제문제에 타격이 컸기 때문에 어머닌 삶에 급급한 나머지 나에게 풍족한 애정을 베풀 나눈 시간적 여유도 제대로 갖지못한채 난 외돌박이로 사춘기시절을 애정결핍 상태로 지내왔다.
그 때문이랄까?
당돌한 계집애는 넓은 아량과 사랑으로 대해주시는 그 신부님을 쉽게 좋아할 수 있었고 신부님의 따뜻한 정을 혼자만이 소유하고 싶은 감정으로 변해갔다. 누구나를 관심있게 대해주시는 그분을 때론 불평을 하면서 유독 신부님의 관심을 끌고픈 심정이었다.
언젠가 추석 전날 3층 층대에서 내려 오시는 신부님과 마주쳤다.
내일이 추석이기 때문에 난 문득 내 그 예쁜 감사치마 저고리를 입은 모습을 신부님께 보이고 싶었다. 추석날은 공휴일이기 때문에 모두가 쉬고 늘 바쁘시던 신부님도 그날은 덜 바쁘실테니까 신부님과 조용히 앉아 얘기를 할 기회도 생기게 될 것이라는 내 예상이, 신부님한테 사진을 찍어달래자는 구실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마음은 한없이 벅차오고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여느때와 같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신부님이 3층 층계를(그분의 사무실은 3층에 있었다.) 내려오고 계셨고 난 아래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중이었기 때문에 층대 중간에서 딱 마주쳤다. 난 내 생각이 시키지 않는데도 문득 나도 모르게 입에서 신부님을 불러놓고야 말았다. 의아하게 바라보시는 신부님께 계속 말을 이었다.
『신부님, 저- 낼 사진 좀 찍어주세요』
『무슨 사진?』
무표정으로 바라보시는 신부님의 모습이 긴장한 얼굴에 쑥스러움을 카바하려 웃으면서 말하는 내 자신에 비해 너무 평범했기 때문에 순간 난 내 그 생각을 꾸짖었다.
(이 바보야. 신부님은 네가 생각하듯 널 좋아하고 계신게 아냐. 그러니까 저렇게 무심한 표정이지)
그렇게 생각된 순간 실망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난 아무렇지 않게 계속 한결같은 표정으로
『그냥 사진요』
하고 더욱 화사하게 웃으며 어색함을 무마시키려 애쓰며 말했다. 신부님도 내가 무안해할까봐서 인지 필요없이 안경을 다시한번 고쳐쓰시며 웃음띤 얼굴로
『오 케이…』
순간 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곤『기술이 없어서…』하며 재치있는 신부님의 답변이 꾸짖고 있던 한구석의 마음을 지워줌과 동시 어색함을 무마시켰다. 한국말을 능숙하게 하셨지만 역시 우리가 듣기엔 조금 어색한 그 말을 난 자꾸 되뇌까리며 일자리에 올때까지도 머리속에서 맴도는 그 말을 생각하고 실성한 사람처럼 자꾸 웃음을 머금었다.
(기술이 없어서… 아이 신부님두… 기술이 없어서… 기술이 없어서… 기술이 없어서…)
생각 할수록 자꾸 자꾸 더 새롭게 기분이 좋아졌고 신부님을 대할 때의 수줍음에 달아올랐던 얼굴이 아주긴 시간동안 식지를 않았다. 그리곤 곰곰히 생각에 잠긴채 일이 통손에 잡히질 않았다.
(어떻게 생각을 하셨을까? 이상하다고 느끼셨을꺼야)
그렇게 깊이 생각을 하다 난 아까 잠시동안 소화시키지 못했던 신부님의 늘 다른사람 대하듯 아무 의미 없는 아까의 그 평범한 표정을 생각했다. 그리곤 그 무표정했던 모습을 분석하기에 온 정신을 쏟고있었다. 내가 신부님을 생각하는 것처럼 신부님이 날 조금이라도 생각해 왔다면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무표정한 표정이었을까? 신부님은 날 좋아하고 있지 않은건지도 몰라. 그래 맞았어. 이렇게 깊은 생각은 꼬리를 물고 그 신부님의 표정은 나중엔 신부님이 날 좋아하고 있나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어쩌자고 난 그 사소한 느낌에 그렇게 큰 판가름을 걸어 놓은 것일까?
(좋아하면서도 무표정한 표정을 지으셨을거야)
(아냐, 너무 의외의 표정이었어)
한참을 이렇게 저렇게 생각한 끝에 그 신부님의 표정은 나에 대해 관심이 없는걸로 판결이 났다.
그렇게 생각이 되자 또 감정은 슬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번째 다시 신부님을 만났을때 아까의 그 약속을 취소했다.
(결국 이 세상에 나는 나 혼자인거야 그 누구도 나 외에 남이지 결코 내 자신일수는 없다. 신도, 부모도, 누구도, 다 내 주위에서 맴돌뿐 결국 이 세상의 나는 나 혼자다. 나는 나 혼자야… 그렇게 지극히 당연한 이론을 난, 왜 이제야 깨닫는 것일까? 그건 네가 병신이었기 때문이야…)
그렇게 자학도 곁들여가며 생각을 하자 그만 울음이 북받쳐 왔다. 난 일부러 집으로 향한 버스를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서울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타고 창가에 앉았다. 빠르게 지나가는 바깥의 풍경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자동차 특유의 비명소리에 놀라 모든 생각을 떨어버리기도 했다.「신세계」앞에 작은 폭포같은 허연 물줄기의 분수가 시원스레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시원함을 느끼면서도 어느덧 그러한 사소로운 모든 것들을 다 슬픔과 연관지어 생각하기 시작했다. 분수도, 거리의 지나가는 사람도, 색깔이 낡은 저 건물들도, 이 버스안의 사람도, 교통순경도 모두가 슬피만 보였고 측은하게만 생각됐다.
그렇게 슬픔과 기쁨이 엇갈린 생활이 거듭하기를 계속하면서 그 해 겨울을 보냈고 또 이듬해의 따뜻한 봄을 맞았다. 그래도 신부님에 대한 마음은 별 변화없이 꾸준했다. 그 해 초봄부터 여름까지 신부님은 해외여행으로 한국에 계시지 않았다. 신부님이 안계신 3월쯤에 난「미스터 김」이란 건실한 청년을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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