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1946년! 그 당시의 추억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민족의 희망과 허욕의 혼합시대라고 하겠다. 물욕인들의 진정서시대였다. 학원도 혼란하였다. 교장은 있는데 교사가 없고 학생이 부족하였다. 경남 C도 C고교에도 최상급반의 영어교사가 언제나 결원이었다. 결원이라기보다 영어교사가 들어가기만 하면 학생들의 집단배척으로 쫓겨나왔다. 특별우대를 조건으로 서울서 모셔간 영어의 대가도 첫시간 강의를 마치기 전에 같은 운명을 맞았다. 학교는 두통을 앓았다. 이때 필자의 존경하는 친우 R형이 등장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학벌도 교단에 선 경험도 없었다.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그동안 실직중에 있던 그는 C고의 교장과 친분이 있었던 것을 계기로 하여 동고교의 영어교사를 자원하고 나온 것이었다. 물론 교맹은 이「천재반」의 과거와 현재를 충분히 설명하고 극력 만류하였으나 R형은 기어코 출강하겠노라고 고집하였다. 경상도의 둔중한 고집! 드디어 R사가 교단에 서서 영어를 가르쳐야할 그날이 왔다. 수업개시의 종은 아직 울리지 않았다. 교사의 초조한 표정! 직원실의 초긴장된 기분, 아아, 5분전이었다. R사는 직원실을 빠져나와 3학년 교실쪽으로 가보았다. 교실옆 골마루에서 서서 보니 학생들은 교단쪽으로 들어가는 문에 바야흐로 안에서 못(針)질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책상들을 교사가 드나드는 그 문에다 딱붙여 쌓아올려 견고한 성벽처럼 문을 봉쇄하는 작업이 거의 완료되고 있었다. 영어교사가 새로 온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한 그들은 완전「방비」를 서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R사는 학생들이 출입하는 뒷문으로 종소리와 동시에 급격히 문은 열고 실내에 들어섰다. (일설에 교실에 들어선 순간 종이 울렸다고도 한다) 불시에 기습을 당한 학생들은 선생이 뒷문으로 입장할 것을 미처 전략에 넣지 않았었다. 신교사는 어느새 교실중앙에서서 학생과 함께 흑판쪽을 향하여 의연한 자세로 서있었다. 학생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집중되었을때 R사는 점잖게 팔을 올려 흑판의 중심을 가르치며 온교실을 폭렬하듯 큰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저기를 보라! 저기에 뭐가있느냐?』학생들은 더욱 당황하였다. 거기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R사는 이어『저기에 저 두꺼비를 보지 못하였느냐? 한마리의 가련한 두꺼비가 묵묵히 걸어가고 있지 않느냐? 』하였다. 청청한 음성과 기이한 스승의 言는 학생들을 현혹시켰다. 결국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두꺼비는 아직도 기어간다. 여러분이 짓밟아도 발길로 차도, 억눌러도 두꺼비는 묵묵히 참고 걸어갈뿐이다. 두꺼비가 흘리는 저 눈물을 보라! 고통과 굴욕의 피가 어려있다!』선생도 학생도 함께 일종 미묘한 묵념에 잠겨버렸다. 이윽고 R사는 한결 소리를 높여『여러분은 이 불쌍한 두꺼비를 죽일 것이냐 살려줄 것이냐?』고 호소했다. 이때 학생들은 『살려야합니다』고 일제히 외쳤다. 그제야 R사는 서서히 교단으로 올라가서 열열히 교육의 의미와 민국의 장래를 논하였다. 학생들은 시간가는 것을 잊고 스승의 훈화에 도취되어 있었다. 어언간 수업완료의 종이 요란스럽게 울리고 있었다.『선생님! 좀 더 이야기를 해주십시요!』하는 것이었다. R사는 태연히 말했다. 『학교의 수업도 종과 더불어 시작되고 종과 더불어 끝나는 법이다. 또 내일이란 날이 있지않느냐!』또 없는 미련을 남긴 대성공의 강의였다. 교실 앞 골마루를 왔다갔다 하면서 R선생의 추방을 근심하던 교감선생은 R사를 껴안고 환성을 올렸다(실은 교감도 무능으로 낙인찍혀 추방직전에 있었다) 후일 R형으로부터 들은바는 이렇다. 이 학생들은 일정말기 전시에 매일같이 비행장작업에 동원되어 영어의 기초도 없었다. 이들에게 부임해 오는 선생마다「분사법」이다「부정법」이다 하며 어려운 것을 가르쳤던 것이 배척의 동기요 원인이었다. R사는 이들을 기초부터 가르쳐 10여 명의 졸업생을 육사ㆍ해사ㆍ부대ㆍ농대에 합격시켰다. (끝으로 R사가 앞서말한 그「두꺼비」는 자기자신이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그 당시 해외에서 귀국한 이 박사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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