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구실도 없이 신부님 사무실을 가자니 어쩐지 꺼림칙했고 그 방에 있는 여러사람들이 혹시나 눈치채지않나 하는 생각에서 였다.
신부님 사무실 문 앞에 와 서자 가슴이 더욱 많이 두근거렸다. 옷 매무시를 다시한번 살펴보고 머리를 되 매만진 다음 조심스레 노크했다.
『똑똑』
『……』
『똑똑』
『……』
아무 대답이 없었다. 손잡이를 비틀어 보았으나 문은 굳게 잠겨져 있었다.
외출중이신가 보다. 순간 엷은 실망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천천히 층계를 내려왔다. 하나 하나 층계를 밟는 내 다리는 이미 맥이 풀려있었다.
그날 오후 난 기어코 신부님께 내 모습을 보이고 의아하게 놀라시는 신부님의 표정에 흡족함을 느꼈다.
그렇게 소일을 하면서 난 어느덧 더 큰 무서운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좋아한다는 감정만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또 만족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신부님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갖고 싶어서였다. 너무나 오랜 기다림이었는지 모른다.
난긴 몇 달 동안을 깊은 고뇌에 빠졌다. 그리곤 순결을 사랑하는 이에게 바쳐도 결코 후회하지 않겠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나의 모든 것을 준다는 것은 또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가를-.
그렇게 굳게 결심을 하고 난 어느 일요일 저녁 신부님께로 전화를 했다. 새로이 맞춘 옷을 입고 곱게 단장한뒤 시청앞의 어느 조촐한 레스트랑에서 카운터 여자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에게 다이얼을 돌렸다. 두려운 기대에 가늘게 손은 떨고있었고 마음은 무척 초조와 불안으로 휩싸이고 있었다.
기계는 곧 찌르륵 하는 반응을 준다. 신부님이 아닌 낯선목소리의 주인공이 그분은 지금 외출중이시라며 의무적인 용건이 끝난뒤 뚝 끊어버린다. 그대로 집으로 돌아간다면 또 그 무서운 고독에 휘말려들어갈것 같아 난 두려워졌다.
색이 다 바랜 누른 색깔의 벽 위에 뎅그마니 걸려있는 시계 하나… 오래도록 팔리지 않은 썩어빠진 사과와 알록달록하게 물들여논 과자 그 성냥갑같은 구멍가게를 지키며 졸고있을 어머니…
난 몸서리를 쳤다. 여전히 그녀는 퇴색한 그 퍼런치마와 팔꿈치를 기운 밤색쉐터 차림새를 하고 있겠지. 생기가 없어 뵈는 그런 그녀가 갑자기 미워지도록 싫었다. 난 그 지겨운 현실을 떠나 어디론지 도피라도 하고싶었다.
그리고 그 무서운 것들이 날 맞이할 것을 생각하자 난 악을쓰고 싶을만큼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 신경뒤엔 또 언제나 슬픈고독 같은것이 뒤따른다. 난 고독에 붙들리지 말아야 한다. 난 백을 열었다. 그리곤 미친듯이 미스터 김의 전화다이얼을 돌렸다. 그를 만나서라도 고독이 나를 방문해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지금 이 상태로 난 초라해지고 싶지않다.
반가운 목소리의 주인공이 약 50분쯤 지나자 성큼한 키에 웃음을 머금고 내 앞에 와 앉았다.
난 나를 잊고 싶었다. 말로만 듣던 독한 술이라는 위스키를 시켰다. 한잔 또 한잔…당황해하는 미스터 김의 존재는 염두에 두지 않은채. 실은 그를 만나면 그 공허를 조금쯤 덜수 있을것 같아서였는데 감정은 위로를 얻기는커녕 그 반대로 자꾸 치달았다.
처음으로 먹어본 술 때문이었을까? 그날 난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아직도 기억이 요원하다.
지금 그 시간이 지난뒤 그때 그분과의 만나지 못함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며 천주님께서 돌봐주신 일인가 하고 나는 가끔 생각할 때가 있다.
한 해, 또 한 해가 바뀌면서 난 조금씩 철(?)이 들기 시작했다. 난 의식적으로 신부님을 피했다.
언젠가 신부님이 해외여행을 하신 것도 나중에야 들은 이야기지만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기 힘든 사랑하는 자기 주변의 한 여인으로부터 멀어져 자신을 좀 더 냉철히 비판하고 사제로서의 생활을 더욱 굳게 지켜나갈 것을 결심하고자 떠난 것이었다는 것을 그분에 대한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알고 싶어했던 내겐 다른 사람보단 빠른속도로 무겁게 전해져왔다.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 나는 한동안 몹시 회오에 빠졌다. 내가 얼마나 신부님께 부담이 되어왔던가를…나에 대한 신부님의 마음을 안 뒤 난 더욱 그분을 위해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를 곰곰히 생각했다. 언젠가의 수녀님 말씀처럼 난 그분의 생활을 파괴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난 나대로의 방안을 세웠다. 그것은 그동안의 정든 직장생활을 그만두어야 될 것 같은 판단으로 내려졌다.
그분을 보지않게 된다면 자연히 그분을 잊을 수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늘 신부님 생각으로만 꽉차있는 나로선 너무나 혹독한 형벌이었으나 눈시울이 뜨거워 질때마다 한참동안을 눈을 내려감는 버릇을 길렀다.
그리곤 단 한방울의 눈물도 흘려선 안된다. 그렇게 된다면 난 내 결심에 지고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럴때마다 자신을 향해 칭찬하며 쓰다듬고 혼자서 쓸쓸한 갈채를 보내야 했다.
직장을 그만둔지 한 달 보름쯤 지난뒤에 난 우연히 버스정류장에서 미스리 언니를 만났다. 난 그간 궁금했던 신부님 주변이야길 전혀 관심없는척 해가며 그녀가 눈치채지 않는 한도내에서 물어보았다. 몹시 긴장한 마음상태를 차분히 억제하면서 별관심없이 이야기해주는 그녀에게 신부님 이야길 조금 들을 수 있었다.
계속 평안히 계시다는것과 어딘가 외로워보이는것 같다는 신부님의 새로운 소식이, 아니 그녀의 하찮은 소리가 예리한 아픔을 준다. 함께 생활을 할 때까지 그런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없었고 또 항상 명랑하신 것 같아 보였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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