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부터 3일간에 걸쳐 원주 원동본당에서 지학순 원주교구장을 선두로 부정부패 규탄과 사회정의 구현을 위한 미사와 기도회를 갖고 데모를 벌인 사실이 지상을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한국에 가톨릭교회가 도입된 이래 이것은 처음으로 발생한 사건이다. 백년간의 박해가 끝나고 교회는 외국인 선교사의 손에 의해 운영되었던 탓인지 일본의 식민정치하에서 안중근(토마스) 의사를 제외하고는 가톨릭 신자로서는 아무도 항일투쟁과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이라고는 없었다.그런 교회가 이젠 공공연하게 데모를 감행했다는 것은 그동안에 우리 교회내에 상당한 변화가 이루어 졌음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 같다.
현재 우리가 몸을 담고 있는 이 사회에 부정이 만연되고 부패가 뿌리박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모두가 부정일소를 갈망하고 부패를 불식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정부도 정당도 언론도 교회도 삼부타파를 부르짖는다. 지난 1일 정부는 퇴페풍조 일소를 선언하고 강력한 단속에 나섰기는 하나 별로 큰기대를 걸지 못하는 것은 우리 국민들의 솔직한 심정이기도 하다. 사실 부정일소를 부르짖기 전에 부정없이 정직하게 살아보겠다는 마음가짐이 더 필요한데도 남은 정직하기 바라면서 자신은 부정을 해서라도 치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인 것 같다. 그래서 부정부패, 타파는 정신적 문제라고 생각된다. 그뿐만 아니라 이 사회는 정의와 진리를 바탕으로 질서 세워진 사회가 아니고 권력과 금력이 판을 치는 사회가 되어 권력과 금력이 사회를 권성하는 주요소로 착각될 정도가 되었다. 권력없고 금력없는 사람은 호소할 곳이 없을 정도가 아니라 숨도 못쉴 정도이다.
아무도 피해만을 받고사는 사람들의 대변인이 돼 줄 사람이 없는 무서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인정은 메마르고 생활경쟁이 극심해가고 있는 이때 권력과 금력에 대항해서 국민의 대변인이 되어 그들의 인권을 옹호해줄 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원주에서 일어난 부정부패 규탄데모의 소식을 처음으로 점했을때 모두가 하고 싶었던 말을 가톨릭교회가 해주는구나 하는 심정에서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이제 이의문들을 분석, 앞으로 가톨릭교회로서 취해야할 태도, 해야할 일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로는 언론기관이 데모의 성격을 모호하게 만든것을 지적할수 있다. 규탄의 내용중에 중앙정보부를 해체하라 반공법을 페지하라고 10월7일자 서울의 모신문은 보도하였다. 그러나 원주교구의 주장은 공포의 정보통치를 중단하라고 했고 지 주교의 말은 언론을 탄압하는 반공법을 폐지하라고 했다. 이것을 거두절미해서 보도했기 때문에 말썽을 빚은것 같고 본의가 왜곡된 것 같다. 교회의 언론기관인 본보는 이를 시정하면서 중앙정보부는 본연의 임무를 완수하기 바라고 현 행반공법을 시정해서 올바른 반공정책을 수립하기 바라는 바이다.
둘째로 이번 원주데모에 대한 타교구의 미온적인 태도이다. 사실 몇몇 신부와 학생들 외에는 이 데모에 호응을 꺼리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사전에 아무런 상의가 없었다는 것과 동기에 대한 의아심과 우리 가톨릭 신자들이 지금까지의 정신자세에서 탈피하지 못한 점 등을 들수있을것 같다. 어쨌든 이번 데모는 불발탄으로 그치는것 같으나 부정부패 일소와 사회정의 구현은 교회가 일역을 담당해야할 엄연한 의무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가톨릭교회의 입장에서 이번 데모의 정당 부당성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앞으로의 우리의 의무를 어떻게 완수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실 이번 데모는 우리의 의무를 재인식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고 따라서 교회내에서 구체적으로 부정부패일소 운동을 전개하는 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누구나 그리스챤이면 사회참여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을 2차「바티깐」공의회는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리고 교회도 교회로서 사회참여를 주저할 수 없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는 교회는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퇴페풍조를 근절하는데 앞장섬으로써 사회참여의 의무를 다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한국 주교단은 공동으로 교회와 사회에 대해서 교회의 입장을 밝히고 또 신자들에게 부정부패 일소 운동의 지침서를 발표해야 할것이다. 지금 한국 국민은 신자나 비신자나 모두가 가톨릭 주교단의 발언을 고대하고 있다. 더구나 이번 원주데모에서 주교단의 멤버의 한사람인 지 주교가 신자들의 선두에 나서지 않았던가? 그래서 만일 한국 주교단이 함구무언 침묵만 지킨다면 교회는 무능하다는 낙인을 받을 위험이 있고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 교회에 대해 더 희망을 걸지 않을지 모른다.
그리고 모든 신자들(성직자ㆍ수도자ㆍ평신자)과 뜻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생활을 반성해야겠다. 부정을 일소하는데 우리는 정말 무엇을 했는지? 오히려 부정을 남보다 더 많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만일 우리중에 부정으로 자기는 치부하고 남에게 손해를 끼쳤다면 당장에 배상하고 생활개선에 노력해야겠다.
부정의 죄를 남에게 뒤집어 씌우기 전에 자신의 부정을 고백하는 노력이 없는 한 사회의 부정부패는 영원히 계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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