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항상 강자보다 약자를, 잘못을 탓하는 자보다 그 죄인을, 즐거움보다 외로움을 더 사랑하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아니 내 자신 무섭도록 고독한 상태에서 소외된 감정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난 나와 비슷한 그런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누구나를 위로하고 싶었고 또 상당히 마음이 끌렸음이 사실이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의 농도가 지을수록 더욱 충격이 큰 것은 당연한 이치인지 모른다. 때문에 그 미스리 언니의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이 내겐 커다란 충격이었다. 난 집으로 직접 들어가기 싫어 해변가로 향했다. 그분의 주위사람들을 만나 그분 소식을 들으면 뭔가 좀 홀가분해질것 같아 그분의 이야길 물었던 것인데, 마음은 더욱 착잡해오며 그리움은 한층 더 메아리쳐 왔다.
그렇게 해변을 벗하길 일년을 넘긴 지금도 난 예전의 습관대로 여전히 변함없이 이 해변을 거닐고 있다.
신부님!
지금 비바람이 몹시 불고 있어요.
신부님, 오늘은 왠지 자꾸 외로움에 휘말려 들어가는 것만 같아요. 이렇게 또다시 이 해변가를 찾지않고선 견딜 수 없었어요. 본국엘 아주 가셨다구요? 우린 바보였어요. 우리의 사랑은 우리의 손안에 있어야 했어요. 아무에게도 넘겨줄 수 없는 귀중한 보배였어요…벌써 우린 1년째 만나보지 못한채 또 한달을 넘기고 말았죠. 어쩌면 전 자꾸만 이렇게 신부님에게로 달려가고픈 생각만 키워지는 걸까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선명해지는 신부님의 얼굴은 또 웬일일까요? 같이 있을땐 몰랐는데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니 난 자꾸 신부님과 비슷한 사람을 찾기위해 방황하나 봅니다. 아마 어두운 주위에 안개낀 날씨가 날 자꾸 신부님의 생각으로 밀어넣나 봐요. 길을 가다가 신부님을 발견하곤 문득 서다 그냥 힘없이 발걸음을 돌린답니다. 신부님과 비슷한 사람을 수없이 발견했죠. 신부님, 신부님도 이 경희만큼 날 생각하고 있을까? 신부님! 신부님께로부터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을때, 그때부터 우리의 사랑과 함께 비극은 자라기 시작했죠. 아마 그때부터라고 해야 정확할거예요. 어쩜 난 지금의 이 비극을 그때 직감했는지 모릅니다. 사회에서 흔히 떠드는 맺지못할 사랑, 해선 안될사랑을 내가 직접 체험하긴 싫었습니다. 허지만 자꾸자꾸 밀물처럼 신부님에게로 향하는 나의 마음을 걷잡을 수 없이, 하나하나 난 그 고귀한 마음을 어떠한 깊은 우물에 붓기 시작했어요. 결국 슬픔으로 끝나게 될줄 알면서도….때론 날 꾸짖어도 보고 어떠한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반비례로 신부님께로 쏠리는 마음은 더욱 짙기만 하더군요. 이제 물은 그 깊은우물속에서부터 차올라 빈틈없이 꽉차있습니다. 아무리 흔들어도 그 물은 줄어들지않습니다. 세월이 지나 비록현실은 다른 형태로 바꿔지더라도…
아무리 다른 친구나 주위사람을 생각하고 만나서 시간을 소비해 봤지만 결국 마지막은 신부님 때문이었고 신부님 이외에 다른 사람은 필요치 않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신부님! 평인이 특수인을 사랑한다는 것에는 감정을 억눌러야 한다는 괴로움이 있다는 것이 새삼스레 또 마음을 아프게 해줍니다.
제가 참죠, 신부님을 위해…모든 것을.
지금 마음의 상태, 신부님 앞에 엎드려 마구마구 울고 싶습니다. 그러면 뭔가 시원히 풀릴것 같아서죠.
그러나 막상 신부님을 대했을때 그 넓은 자비와 따뜻한 마음씨는 그만 저의 모든 감정을 감춰지게 해주시더군요. 아무말 않고 타인처럼 하는 그 대화속에저의 깊은 마음과 희생이 있었음을 신부님은 아십니까? 신부님, 부디 현실은 슬픈거라고 알게하지 말아 주십시오. 꼭 금의환향 하시길 기다리겠습니다.
신부님의 명랑한 표정뒤엔 늘 쓸쓸함과 고독함이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음을 난 역력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니, 고독함과 쓸쓸함이란 단어로 표현하기엔 너무 부족한 폐부를 찌르는듯한 숨겨져 있는 당신의 얼이었습니다.
때론 신부님이란 제한된 주변내에 속인이 범람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당연히 잘알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이 순간순간 더욱 또렷해질때 나의 마음은 한없는 허탈감과 커다란 슬픔에 잠겨야 했습니다.
허지만 흐르는 강물을 막아 얼마만큼 공간이 지나면 그물은 잔뜩불어 뚝을 무너뜨리고 다시 서서히 흐르고야 맙니다.
신부님에게로 향하는 저의 마음을 억제한다는 것이 몇번이나 뚝을 무너뜨리고 나서야 어리석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러나 난 결코 신부님을 소유하지 않으며 아니 파계가 되지 않도록 기구하겠습니다. 날 잊지않고 계신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어요. 어찌 감히 신부님과 생을 같이 한다는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어요? 좀 더 많은 생각과 좀 더 깊이 신중하게 행동하며 우리 서로의 앞날이 빛날 수 있도록 빌어봅시다.
신부님!
이젠 이 해변가도 떠나야겠습니다. 이 푸른 강물은 아마도 영원히 흐를 것입니다….
끝까지 성직자의 거룩한 생을 보내시기 바라며….
어느사이엔가 내 곁엔 우산을 받쳐든 미스터 김의 따스한 눈길과 어깨엔 그의 한팔이 곱게 날 감싸고 있었다. 한참을 날 찾아 헤맸다며 눈을 흘기는 그가 이젠 밉지않다. 조심스레 감싼 그의 품안에서 난 가만히 그리움이 회복되길 기다린다. 저 푸른 강물처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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