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略)다른 사람도 아니오 성직자들이 이렇게 움직이는 것을 우리는 깊은 관심으로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中略) 혈기에 좌우되는 청년들도 아니고 또 어떤 집단의 이해관계로 나오는 노사 대립도 아니요. 세상을 성화하려는 성의자 및 신도들의 행동이라는데서 더욱 중대시하는 것이다. (中略) 이때에 우리 성의자들은 미국의 청교도같이 나라와 의를 구하기를 바라면서 전도를 내다보려 한다. ▲심지어는 종교계에서도 이를 참다못해 가톨릭 원주교구에서도 3백명의 신도들이 사흘째 부정부패 규탄대회를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정부는 이제 서정쇄신이란 구호를 과감한 행동으로 옮길 때가 왔다. ▲천주교 원주교구 신도들이「부패규탄」시위. 이 현실참여에 그저 숙연. ▲천주교, 성직자 포함한「사회정의실현」시위. 종교인의 현실참여에 괄목. ▲가톨릭 신도 1천여 부정일소 데모. 부정도 필적품이 됐는데 일소하면 어쩌지? ▲(前略) 모든 사람이 잠들어 있을 때「 눈을 뜨고」밤을 밝히는 힘을 준다. 종교는 잠든 양심을 일깨우고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맹목적인 생에 순응하는 자들에게 진리의 죽음이라는 용기를 준다. 천사들이 부는 나팔소리를 듣는 자들은 악이 지배하는 심야의 잠으로부터 눈을 뜨게 된다. 그래서 종교는 사회의 도피처가 아니라 참여의 광장이 된다. ▲종교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게 된다. 사람만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서도 그것은 두개의 얼굴을 나타낸다. 어느 세대에는 종교가 현실도피의 방편이 되기도 하고 또 어느시대에는 현실참여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한국의 종교는 어떠했는가? 그것은 마취제였는가 각성제였는가?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한국의 종교는 마취제라는 인상을 많이 받아왔던 것 같다.
요즈음 일부 천주교도들이 부정부패 정화운동에 나서고 있기는 하지만 정치문제뿐아니라 오늘의 혼탁한 사회 내에서 종교인들이 걸머져야 할 십자가는 너무나도 많은 것 같다. 종교가 마취제냐? 각성제냐? 우리는 그것을 주시하고 있다. ▲이상은 이달초 원주에서 있은 우리교회 성직 수도 평신자들의 부정부패 일소를 외치는 데모와 서울서 있은 이같은 일련의 데모에 대한 도하 각 일간지들의 평이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위치에 설 것인가? 교회는 빛나는 정신적 실고를 가지고 있다. 이제 바야흐로 이 실고의 문을 활짝 열어 제칠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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