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끔히 비질된 교정 한구석에 락엽이 서너 잎 딩굴고 있다. 이제서야 그 위에 눈길이 이끌려가는 것은 계절감각이 둔화한 탓일까. 늦가을 어느오후, 미색 커어튼이 드리워진 내 방 안을 가슴속인양 파고드는 따뜻한 햇빛을 어루만지며 흩어진 상념들을 모아본다.
수렴과 향유의 계절이 요즈음 이랄진대 거둬 들여지지 않은채 저렇듯 화단에 쌓여져 있는, 사람의 손이 닿지않는 비탈위나 청소끝에도 수렴되지 않은채 교정의 어느 이름없는 지점에 미련없이 버려져 있는 저 낙엽들은 웬일일까? 낙엽이란 도시 거둬들이는 것이 아니어서일까? 그렇다면 이 무슨 낭비이냐고 반문해봄직도 하다. 낭비는 자연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다. 지구중심설이 폐기된지 이미 오래다고 하지만 떼이야르 신부 말마따나「사고단」에 어떤 가치론적 우위를 수여할 수 있기에 하늘의 수많은 저 별들, 물량적 차원에서는 단연 압도하는 저 별들이 이 보잘 것 없는 지구를 위해서 마련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도 하나의 낭비가 아닐까? 한 아기가 수태되기까지에도 얼마나 많은 소모가 소요되는가? 그리하여 우리 각자는 스스로가 거의 우연에 가까운 확율의 소산이라는 착각과 무상에 잠겨버릴 수도 있으리라. 있어도 좋고 없어도 그만인 나, 어떤 무명의 제3자로 언제라도 대가해서 무간할 수도 있는 나이겠기에 말이다. 다수와 양산은 헐값과 상통하는 가치개념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가멸과 아량의 상징일 수도 있다. 이 상징이 때로는 비정향적일 수도 있고 따라서 배후의 지향이 무모하게 구상화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구상화형식의 섬세성과 함목적성에 관한 문제이며 근본에 깔려있는 사랑과 아량이라는 의취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이 광활한 우주안에 정신과 사고를 갖춘 인간에게 한자리를 마련하시느라고 그처럼 수많은 별들과 수백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싹을 소모하신 것이 아닐까? 신약성서에도 예수는 빵을 많게 하는 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먹이시고도 오히려 일곱바구니나 남김 적이 있었고(마르꼬8, 1~10)「가나」의 혼연에서도 480내지 700에 해당하는 술을 많게하여 신랑을 곤경에서 구해주셨다(요한2, 1~11)고 전한다. 빵과 술 성체성사야말로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자기 소모의 극치가 아닐까? 이 자기 소모가 아깝지 않고 인간의 배신끝에도 오히려 여한이 없으신 것은 사랑때문이리라.
진주를 도야지에게 던져주어서도 안되겠고 은총을 싸구려처럼 느끼게해서도 안되겠지만 왕 자신보다도 더 왕상파연하는 신하처럼 하느님의 자비와 성신의 카리스마에 제동을 거는 오연한 교회는 그 인색과 협량으로 심판을 면치못할 것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그는 선물을 받아 비로소 존립할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고 풍요의 수렴끝에 사온의 정을 느끼게하는 대신 부정의 수획로 배신감과 허탈감으로 그 마음을 메마르게하는 계절을 맞고 보내게 하는 교회와 사회는 축복은 커녕 오히려 저주를 받기 마련일것이다. 어쩌면 그리스도교인이란 물량가치에서 희소가치를 발굴할줄 알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듯한 무명의 잉여인간을 일회적 사건으로서 소중하게 여기기로 작심한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겠다.
▲이번호부터는 가톨릭 신학대학 교수 박상래 신부께서 본란을 위해 수고하시겠습니다. <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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