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밤은 깊었다. 나는 새삼스레 정신을 가다듬고 고요히 사색의 산책에 나서본다. 유성이 숨지는 하늘에 유난히 별들이 총총하다. 보이지 않는 세월의 수레를 타고 나는 간다. 그속에 변화가 있고 허무와 무상이 있다. 거친 세파에 부대끼다 죽음의 심연속으로 사라지는 인생! 이것을 고인은 초로인생이라는 말로 정의를 내렸다. 젊은 시적의 원대한 꿈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파도조각처럼 풀어지고 인생 극단을 허우적거리는 노인이 되어 급기야는 자연질서 속으로 휩싸여버린다. 인생은 나이어린 철부지한 시절에는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로 머물다가 사리를 분별할줄 아는 성인이 될때면 대부분 현실주의를 추구한다. 그러나 청년기를 거쳐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철학자의 모습을 닮아간다.
그래서 죽음이라는 자연법칙이 현실 문제로 나와 관련을 가질때 참된 나는 발견된다. 죽음의 순간에서 보여지는 나는 죽기 전에 깨닫는 것이 인간의 갈길이다. 인간의 행복은 쾌락나 허영의 풍부가 아니라 참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할 때의 시간이다. 존재 자체는 인간이 아니다. 따라서 존재하기 때문에 산다는 인생관도 성립될수 없다. 존재의 외의를 찾는데서 인생은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것이며 이것이 곧 참된 나의 발견이다. 그러나 할 것을 무시하고 생물학적 삶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스스로를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며 무한을 갈망하면서 유한의 위치에 자기를 둔다. 웃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모순을 범하고 있는 것이 그들의 모습이다. 산다는 것도 죽는다는 것도 모두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올바로 살지 못하고 죽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현상에 불과하다. 인생은 두갈래 세갈래의 길목에서 서성거리는 것이 아니다. 그릇된 철학에 기대를 걸고 현대과학에 충성을 맹세하고 사이비 종교에 귀중한 인격을 매도하는 따위의 우둔한 행동도 안한다. 오직 하나의 길만이 있을 뿐이다. 그길은 인간의 수준을 바로 알고 그 위치를 지킬때 우리는 볼 수 있다. 죽음을 목전에 놓고 생명의 곡예를 부리는 인생, 그러나 생사에 초연하고 영원을 회구하는 인새들의 행진도 있다. 세상을 위주로 살다 슬픈 운명의 소유자가 되어 애절한 비가 속에 피날레를 장식하는 그들에게 우리 크리스찬은 그리스도를 알리자.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신자는 순교자적 정신으로 신자로서의 소임에 충실하고 갈길 몰라 방황하는 잃어버린 양들에게 참된 그리스도상을 부각시키자.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