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 제4차 평신도의 날을 기해서 주교단은 신자들과 선의의 모든 국민들에게 보내는 형식으로 오늘의 부조리를 극복하자는 공동교서를 발표했다. 이 교서는 그 주장하는 내용에 있어서나 시기적으로 보아서나 가장 적절한 획기적인 처사였다. 현재 한국사회는 부정부패가 만성화되고 또 극대화 되어서 온 국민이 다같이 이사회의 부조리를 개탄해마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치 경제 문화 등 각계각층에서 서정쇄신이니 정품ㆍ신풍 등의 구호를 내걸고 부정부패와 통신풍조를 일소하는데 각기 제 나름대로의 안간힘을 쓰고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대부분이 겉치례의 헛구호에 지나지 않고 실질적으로 별효과를 나타내기는 커녕 오히려 사회의 부패 현상은 날로 더 심하여 실로 불신을 넘어선 위기감마저 금할 수 없는 정도이다. 요즘 날마다 신문지상을 어지럽히는 각종 부패상황이 국정감사를 통해서 쏟아져나오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비록 그것이 빙상일각일 망정 사실의 진상을 엿볼 수 있다. 이와같이 사회의 정의가 빛을잃고 부조리가 판을 치면서 나라의 장래가 염려되는 이 때에 우리교회는 과연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할것인가.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고 전달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면 교회는 마땅히 이러한 사회환경을 극복하는데 앞장서고 나서야 할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교회는 너무나 현실 사회문제에 대해서 외면하고 무관심하게 지내온것이 사실이다. 지난번 원주교구에서 이사회의 부패상을 몸소 뼈저리게 느낀 나머지 이를 공개적으로 규탄하기 위한 시위행동을 취한일이 있었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본란에서도 언급한바 있거니와 교회 내외를 통해서 상당한 충격과 파문을 던져주었다. 이에 대해서는 교회 안팎을 막론하고 찬부양론니 엇갈릴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한국 가톨릭교회가 2백년의 침묵을 깨뜨리고 사회 현실문제에 대해 이와같이 용감한 발언과 자세를 취했다는 것은 참으로 커다란 의의를 인정치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뒤따라 또 반드시 그와 직접 관련성은 없겠으나 전국 주교단에서 이와같은 공동교서를 천하에 공개하여 교회안의 성직자나 평신자들은 물론 교회밖의 일반국민들에게까지 이 사회에 대한 교회의 사명을 일깨워주고 또 국민과 더불어 다같이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해주었다. 이는 진실로 교회가 본연의 사명인 사회의 구원을 위해 정의와 사랑을 구현하는 실천적인 행동을 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안의 각 분야에서는 환영하는 뜻은 물론 다시 옷깃을 여미고 반성하고 실천하는 태세를 다짐하고 있을줄로 믿는다. 뿐만아니라 금번의 교서는 예상 밖으로 일반 사회인에게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각 일간신문에 대서특필로 보도 했을뿐만 아니라 사설과 논평 등으로 진지한 평가를 부여한데 대해서 우리는 더한층 이 공동교서의 사회적 의의를 인식하면서 이의 실천구현을 위해 발문방식해야겠다.
교서의 내용에 대해서는 새삼 자세히 논급할 여지가 없다. 교회의 대사회적 부조리상을 여실히 척견하면서 정치ㆍ경제ㆍ사회 각 부면의 맹성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특히 이런 상황하의 교회의 책임성을 역설하면서 우리의 반성과 희생적 사랑으로서의 극복책을 명시해 주었다. 그와같이 제시된 내용은 만번 당연한것이고 우리 신자뿐아니라 사회 만민이 한결같이 공감하는 바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사회는 그것을 느끼는 것을 원치않고 그것을 행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 오늘은 이미 여기 부정이 있다. 저기 부패가 있다고 외치는 소리보다도 이렇게 부정하지 말자. 저렇게 부패를 막자고 하는 방법이 절실히 또 급하게 요청되고 있다. 교서의 마지막 호소에서 지적된바와 같이 교회가 먼저 솔선해서 양심적 생활을 보여주고 온갖 종류의 특혜를 버리고 뇌물제공의 유혹을 용감히 물리쳐야 하겠다. 교회는 정명 세속과 타협할 수 없고 부정부패와 타협할수 없다.
교회는 세상의 소금이오 빛이라고 항상 우리는 외치고 있다. 소금은 부패를 막는 약이요, 빛은 암흑 즉 부정을 소멸하는 힘이다. 만약에 소금에 짠맛이 없거나 빛에 그늘이 지워 있다면 어찌 부패와 암흑의 세력을 꺾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교회밖의 사람들에게 큰소리치기 이전에 교회 스스로가 즉 성직자나 수도자나 평신자 자신들이 먼저 소금의 본질인 짠맛을 그대로 간직해야 하겠고 빛의 힘이 되는 정의와 사랑의 무장을 갖추어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구성원인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무엇보다도 첫째로 스스로 부정하지 말고 둘째로 다른사람의 부정에 타협하지 말고 셋째로는 모든 부정을 용감하게 고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우리는 교서가 지적한바와 같이 다소의 현세적 손실이 뒤따를 것이고 또 때로는 부당한 압박을 받을것을 각오해야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2천년전에 우리에게 이것을 시법해주셨다. 옛날의 우리 선조들은 신앙을 위해서 기꺼이 치명도 하셨다. 울는 사회를 위해서 순교할만한 용기가 없이는 오늘의 부조리를 극복하는 길은 요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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