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닥치는 대림절을 두고 우리는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되풀이해왔다. 그러나 시대적인 여건들에 있어 다소 변화가 많았던것 같아서 금년의 대림절은 한층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하고있다. 따라서 본란은 가톨릭 신자이면 누구나 공동적으로 가지고 있는 대림절의 의의를 다시한번 새롭게 하고 나아가서 현재의 시대조류와 거기에서 파생되는 우리의 생활현실을 기준으로 대림절의 새로운 의미를 찾고 마지막으로 대림절의 최종목표인 인간의 영원한 희망에 대해 다시 한번 현실적인 규명을 해보고자 하는 바이다. 첫째, 대림절에 있어 교회가 우리에게 주는 영구불변의 진리의 측면을 보자. 대림절이라고 하면 문자가 표현해주는 바와 같이 기다리는 행위다. 어떤 미래의 사실에 대한 확신을 의미한다. 즉 어떤 미래의 사실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기다리는 시기를 뜻하는 것이다. 인간은 막연하고 정서적인 소개안에서 기다리려면 불안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확신속에서의 기다림은 의지의 작용인 동시에 불안보다도 안전감을 느끼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것이다. 한편 신화에서 나왔건, 인과율에서 나왔건간에 행복에 대한 염원은 인간이 가지는 가장 핵심되는 확실성이요 인생의 현실적인 목표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이 현재 위치에서 불안을 느낄때 완전한 안정과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세계를 동경하게 되는 것이다. 영원하고 완전한 행복의 추구는 인간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의 부조리와 모순의 악순환속에서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며 사는 인간의 종교심리에 대림절이란 전례의 부분이 들어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희생의 심볼」로서 인간의 모든 상처를 씻어주는 인자한 하느님의 출현은 그야말로 인간에게는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와같은 하느님의 영웅적인 강생은 이스라엘 민족의 4천년간에 걸쳐 지속된 염원이었을뿐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기원을 말해주는 역사가 되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대림절은 가톨릭 전례의 시작인 동시에 연중을 통해 행해지는 모든 전례의 시발점이요, 근원이 되는 것이며 대림절로 전례의 막을 여는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정서를 최대한으로 살려주는 종교인 것이다.
둘째, 현금의 시대조류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생활여건속에서 대림절의 의의를 살펴보자. 정부가 내건 경제계획은 내용이야 어떻든 겉으로는 우리생활 형태를 바꾸어 놓을 정도로 급진적인 것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10년을 넘기고 난 후의 사정은 어떠한가? 소득의 격차문제라든지 이익분배의 불균형 등의 물리적인 문제는 차치 물론하고라도 최근 식자간에 논의의 대상이 되고있는 부정부패는 좀 더 사회학적이며 종교양심적인 분석과 치료를 요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사회질서는 단순히 제도나 법률의 보강만으로는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인간본질 문제로 비약한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럴때일수록 현실을 직시하면서도『사람만이 사람에 대한 적일 수 있다. 사람만이 사람으로부터 그의 행동과 생활의 의의를 빼앗을 수 있다. 왜냐하면 실제적인 사실에서 자유라고 인식한 것은 역시 그에게만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는 시몬드 보봐르의 애매의 윤리학 구절을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은 우리들로 하여금 기계적이고 수학적인 경제계획에 우리의 인격을 떠맡길 수 없음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간에 노동자의 인격화가 요구되는 시대이다.
모든면에서 양심과 자유와 정의가 보장되고 실천되는 차원높은 사회윤리를 모든 국민이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로 볼 때 최근에 한국 주교단이 발표한「부조리에 대한 도전」은 대림절을 맞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각도의 각성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의 속화를 일방적으로 부르짖는 것은 아니다. 다만 좀 더 나은 세계에로의 노력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현실적으로 맛보며 천국과 은총의 세계에 대한 갈망을 한층 현실화해보자는 데에 그 진의가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영원한 희망은 결코 대립적이거나 평행선상의 곡예가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현실의 가치가 점증하고 있는 지금에 있어서 영원이란 말은 한낱 우화에 지나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인간은 자신의 인격에서 신격화내지 신의 영역에의 참여 가능성을 인정하게 되며 거기서 참된 인간이 자유와 존재의 가치를 찾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어떤 경우를 희망하든지간에 영원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행복을 원한다면 그 행복이란 자유와 정의와 진리가 충만한 세계에서의 완전한 것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종교는 대림절에서 시작되며 종교의 발전은 더 나은 세계에의 희망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현실과 타협한 안일주의에서 종교는 무용지물에 불과한 것이며 현실주의가 종교를 운운한다면 그 자체로 모순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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