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에게는 시간이란 항상 짧기 마련이다. 먼동이 트일때까지 사랑하는 이의 품속에 안겨있다가 새벽을 알리는 야경군의 외침에 소스라쳐 깨나는 어느 여인은 이렇게 푸념할 수 있었다.
『맙소서 벌써 새벽이야? 제발 이 밤이 새지 말아 주었으면…내 애인이 내 곁에 머무를 수 있게 말이예요. 야경군이 새벽을 알리지 말아준다면 좀 좋겠어요. 아이구 벌써 새벽이군요! 이렇게 새벽이 빨리 찾아올 줄이야!』
그런가 하면 배신 끝에 지금은 가고 없는 연인을 상노와 회한 속에 추억하는 그 밤은 얄궂게도 길다. 『제발 이 밤만이라도 어서 밝아주었으면!』
사랑의 시간은 현재의 순간속에 뛰어든 영원이다. 사랑의 시간은 시간성의 부정으로서의 영원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상존재로 남아있는 동안은 이 부정의 효과를 가름해 주는 것이 바로 다름아닌 지속으로서의 시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이 부정이 효과적일때 우리는 그를 일러 신의라 하고 비효과적일때 착각이라 해서 좋을 것이고 이 착각을 도의적으로는 배신감이라 이름해서 마땅할 것이다. 질투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신의와 배신 양극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불안이다.
그것은 또한 사랑의 응답이 애매하다 함이며, 내 사랑의 배타성과 진지함의 신호이고 시간이 지속하는 동안 언제라도 나에게서 빠져 달아날 수 있는 애인의 자유에 대한 끊임없는 호소이다. 호소일수밖에 없는 것은 억지 사랑은 변질된 사랑이며 이런 사랑을 강요하는 나는 부실하고 구차한 존재로 타락하고 말기 때문이다. 질투란 나에게의 사랑이 늘 필연적이고 배타적이며 그러면서도 자유로워야 한다는 역설적 기도앞에서 무기력하다는 인간의 자기고백이다.
사랑이 진정이기 위해서는 이처럼 시간적 차원 즉 역사적 차원을 진지하게 감안하지 않을 수 없겠다. 순간의 감정에 충실하려고만 한다면 그것이 비록 자기 정직일지는 몰라도 첫사랑의 진정성을 검증해주는 시간의 시련을 아직 거치지 않은 동안은 미쳐 다 인간화하지 못한 자기 정직이요 사랑이겠다.
사랑이 비록 그 표현에 있어서는 순간에만 존재한다 하드라도 사랑은 배우자의 인격의 일부에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전체에 이어진다. 그런데 이 전체로서의 인격이 어느 한순간에 할 수는 없다. 인격은 지속이요 발전이기 때문이다.
순간의 일부가 전체를 누리려는 충일에의 원의를 과연 충족시킬 수 있는가? 사랑은 지속과 역사를 영위하는 한 인격에 나의 인격을 이어주는 유대이다. 신의는 이 사랑의 유대의「시간화」이다. 시간이 인간 존재의 소재를 이루는 한도 내에서 신의는 사랑의 본질이다. 이처럼 신의는 윤리적뿐만 아니라 존재론적 법주이다. 물론 미래가 부여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기에 사랑은 언젠가는 미래를 걸고 내려야 하는 결단을 요구하고 이 결단은 배타성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이 결단의 모험에는 성공의 보람이 없다.
미래를 거는 온갖 약속을 인간화하는 길은 불투명하고 애매한대로 애인의 말씀을 신임하고 그의 사랑의 거동에 신뢰하면서 신의를 지켜나가는 길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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