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드라도 교회는 돈버는 영리단체가 될 수 없다. 그렇다고 교회가 돈없이 운영될 수 있다는 것도 아니다. 교회와 돈과의 사이에는 친구도 원수도 될 수 없는 묘한 관계가 있다.
지금 각 본당에서는 교무금 책정관계로 한참 바쁜때이다. 그런데 금년 들어서 어떤 본당에서는 새로운 교무금 사정원칙을 정한데도 있고 또 다른 본당에서는 교무금의 원래의 뜻만을 살리면서 교무금 징수를 폐지한데도 있다.
그럼 교무금이란 과연 어떤 뜻을 내포하고 있는가? 교회는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성전이며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성전이며 하느님의 은혜가 전달되는 궁전이다. 어떤 인간이든지간에 자신의 구원을 교회를 통해서만 받을수 있고 교회는 따라서 인간구원을 위한 필수불가결의 존재이다. 그렇다면 신자들은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자기자신을 위한 것이 된다.
그런데 교회를 위하는 마음 없는 신앙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은 반드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수반한다는 것이다. 무교회주의라는 것은 벌써 크리스챤 신앙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통해서 인간이 당신께로 나아갈수 있게 했는데 그 매개체를 무시한다는 것은 그리스도 뜻을 배척하고 자기 개인의 뜻대로 종교생활을 하겠다는것 밖에 되지 않는다. 교회를 사랑하지 않고 교회를 통하지 않는 신앙은 거짓신앙이 되고 만다.
교회를 위하는 마음이 현실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교회 운영에 참여하는 것이며 교회 운영을 위해서 교무금을 납부하는 것이다. 교회 신자들이 교회 운영을 맡아주지 않는다면 누가 교회를 운영해 줄것인가? 교회가 없어진다면 신자들은 어디서 하느님을 찾아뵙고 그의 은총을 받을 것인가? 교무금 납부는 신자의 큰 의무중에 하나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교무금 납부는 소홀히 하는 신자들이 상당히 많다고 하니 신앙에 위기를 고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교무금 납부의 의무를 강조했다고 해서 교무금이 지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했다고 볼 수는 없다.
첫째로 교무금을 받아들이는 당국 측의 태도문제가 있다. 신자들에게 교무금 납부만을 강요하고 교회 운영에 대한 신자들의 참여를 거부한다면 모순이 있는것이다. 물론 벌써 많은 본당에서는 본당 운영위원회를 구성, 교회 운영의 전반을 평신도의 손에 넘겨주고 있으나 아직도 형식적인 본당도 많고 본당이 너무도 많은 비밀속에 운영되고 있는데도 많다.
이러한 사실은 하루속히 시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둘째로는 교무금 액수를 어떻게 책정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지난번에 발표된 종교사회 조사 결과보고서에 총수입의 얼마를 교무금으로 내는것이 적당한가? 하는 질문의 답은 다음과 같다. 신부 신학생 수녀 지성인 전교회장 대학생들의 답 전체의 비례는 전체수입의 10분의 1을 교무금으로 내야한다는 것이 10%, 20분의 1이 32%, 30분의 1이 34%이다. 그런데 신부 지성인 전교회장에 한해서는 20분의 1이 33%, 30분의 1이 41%로서 30분의 1을 주장하는 수가 월등하게 많다. 구약성경에서는 전체수입의 10분의 1을 성전에 바치라고 했으나 시대도 변화되었고 교회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신부와 전교회장, 교회에 관심이 많은 지성인들이 교회 운영을 보았으나 신자들의 교무금 납부가능성을 보아서 30분의 1이 적당하다면 모든 신자들이 자기 전체수입의 30분의 1을 바치게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본당에 따라 그 나름대로의 교무금 사정원칙을 세울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월수입 1만원 미만의 신자들에게는 전체수입의 몇분의 얼마를 바치기보다는 각자의 자유에 일임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월수입 1만원 미만이라면 생계도 겨우 이어가는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이며 오히려 교회에서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자 측에서는 자기가 교회의 도움을 받는한이 있드라도 교회에 참여한다는 뜻을 살려가야 할것이다.
셋째로는 교무금 액수만을 책정해 놓고 교무금이 납부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할것인가? 사실 이것은 큰문제이다. 차제에 신자들에게 호소하고 싶은 것은 각자는 양심적으로 교무금을 납부해야 한다는 의무를 다시한번 강조하는 바이다.
넷째로는 도시와 농촌간의 격차 문제이다. 농촌본당 신자들이 자기수입에 비해서 내는 교무금의 액수는 도시본당 신자들이 내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도시본당에서는 교무금이 적어도 신자수가 많고 또 기타수입도 있어서 교회를 운영할 수 있지만 농촌본당에서는 그와 반대로 주로 교무금에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교무금의 액수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무금 사정에 있어서도 교구적인 나아가서는 전국적인 안목과 계획이 필요하다고 본다. 도시본당과 농촌본당이 같은 비율의 교무금을 받아서 도시본당이 농촌본당 운영을 도와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또 도시본당 신자들의 신앙교육에도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난한 형제들을 도와주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외국의 원조로 운영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 물질적으로는 도움이 되었는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우리를 약화시킨 원인도 되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교회를 운영해야하며 우리교회를 자립의 교회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80만 신자 모두가 각성하고 노력하는 것이 절대로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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