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어떤 친구의 이야기였다. 『이제는 자네도 그만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외쳐보아도 대답도 없고 허구많은 기도에는 침묵과,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비참에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그이를 자네는 왜 그다지도 기다리고 있나? 자네를 조소하고 우롱하는 자네 이웃들은 그만두고서라도 자네의 선의와 성실과 능력을 아끼고 자네를 소중하게 여길줄 아는, 이를테면 나와같은 친구의 충고와 간언에 이제는 좀 귀를 기울여 봄직도 하지 않은가? 자네는 왜그리 아집이 심한가? 오지도 않겠지만 그저 막연하게 오겠다고만 했지 언제 어느곳이라고 시간과 장소를 약속하지도 않은 그이를 무엇 때문에 못내 잊지못하고 일손을 멈추며 서성거리며 기다리고 있는가? 그런 이를 기다린다는 것은 시간낭비요 미련한 짓이야. 그이가 기다릴수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고나서 기다리라고 했다면 모르지만…도대체 이런상황에서 기다린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정직하게 말해보게. 자네 그이를 도대체 기다리고 있기나 한가? 나 보기엔 자네는 기다린다는 것이 자기기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단말야. 자네는 또 자기 정직에의 집착은 아직 못버리고 있거든. 그래서 겉으로는 아직 기다리고 있노라고 장담하지만 내심으로는 기다려 볼 용기조차 없는것이 아닌가? 자네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다리지 않고 있을뿐 아니라 기다리지 않기로 아예 단념한 것이 아냐? 그래, 그래야지, 그게 정직하고 현명한 태도이니까』다른친구의 대구. 『자살이나 실망에도 권리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진다면 좀 우스운 이야기가 되겠지. 또 기다리지 않기로 단념한다는 것이 바로 실망을 의미하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리스도 신앙인에게는 실망할 권리가 박탈되었다는 사실이야. 나도 가끔 생각은 해보네 실망할 수만 있으면 좀 좋으랴 하고. 약간은 비장하고 일말의 여한을 감출길 없지만. 그런대로 출로가 없는 이 인간도시에서 삶을 이어가게 하는 보람같은게 있다면 그것은 성실과 책임과 효율로 이웃을 봉사하는 길밖에 없다고 말이야. 이런생각이 아주 틀렸다고는 나도 말하지 않지. 하지만 과연 이런 태도가 그이를 기다린다는 태도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인지? 나도 그이를 내 후견인처럼은 생각 안해. 또 그이를 기다린다고 해서 나하고만 밀회를 약속이나 하신 것처럼 내가 우쭐대는 것도 하니고 이웃의 봉사에 안락과 해이와 현장 부재와 도피를 일삼는다면 모르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으려고 내 나름대로 애를 쓰는 터이니까. 선구자적인 발언이나 잠정적인 징표는 얼마든지 있지. 대답없는 물음속에서 우리가 질식할 수도 있겠지. 설명없는 까닭과 숱한 사연들이 여한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지. 하지만 나는 그이를 그저 보고 싶을뿐이야. 까닭을 설명받고 억울한 사연들을 해명받자는 뜻도 되겠지만 그리스도교는 해명의 논리라기 보다는 극복의 실리를 더 중요시한다는 것이 정확할거야. 망각과 위로가 내게 창피일 수 없고 그이의 내게 대한 사랑이 나의 자의식을, 나를 송두리째 흡수해 버린다고 해서 그것이 나의 자기 소외일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내가 아직도 그이를 기다리고 있는 까닭이라고 할까』어느덧 대림절을 맞았다. 두 친구의 대화는 나의 독백에 지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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