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이던 대심문관이 그리스도에게 한 말이 있다. 『당신은 인간이 선악의 의식에 있어서의 자유로운 선택보다는 평안함을, 심지어는 죽음을 더 귀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잊었소? … 그런데 당신은 인간의 양심을 영원히 평안케하는 확고한 원칙들을 주는 대신, 이상하고, 수수께끼처럼 아리송한, 인간의 힘에 겨운 개념들만을 주었소…. 당신은 인간을 너무 높이 평가했었소…인간이란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약하고 비열하단 말예요… 인간이라는 가련한 생물들에겐, 타고난 자유라는 선물을 넘겨줄 사람을 한시 바삐 찾아내야만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란 말이오…인간이나 인간사회에서 자유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일찍이 없었으니까』(도스또에프스키 著「까라마조프네 형제 들」참조)
그리스도는 인간을 과대평가하였고 그 이상을 너무높이 책정한 셈이다. 그는 인간에게 자유를 회복시켜 주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인간은 이 자유를 주체하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저마다 자유를 행사하다 보니 남의 자유가 나에게 위험이 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여기에서부터 나의 자유는 제한되기 시작한다. 자발적 양보에서부터 비롯하여 상호간의 근신과 절제, 그리고 인습을 거쳐 구속력을 갖는 법률이 생기고, 마침내 사람들은 범람하는 자유의 홍수를 규제하는 임무를 심지어 폭력과 독재에 일임해 버리는 수도 있다. 와이마르 공화국 시대의 독일국민이 증유의 독재자 히틀러의 집권을 묵인한 것은 자유에서의 도피심리에서 해명된다고 에릭 프돔은 지적한다. 남의 자유가 내게는 불안의 씨가 된다는 것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나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인간은 삶을 이어가기 위하여 자유의 영역에다 둑을 쌓고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둬버린다. 이둑의 높이와 한계를 알맞게 조정해주는 사람은 권위로 군림하게되고 인간은 그 앞에 자기의 자유를 바치고「공존을 위한 제한된 자유」라는 미명하에 고립된 독립권 안에서 스스로를 비인간화한다. 이와 같은 현실주의자, 보수주의자에게는 영생이라는 소명이 달가울 수 없다. 양심에 따라 선악을 판별하고 자유로이 양자택일을 하여야 하는데, 자유행사의 일거수일투족이 자기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한다고 생각해 볼 때, 순간마다의 자유행사에 전를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때의 자유는 주체스럽기만 하고 그 행사는 위험천만의 장난이다. 누가 이 짐을 덜어주고 이 모험을 대행할 사람, 즉 권위는 없는가 하고 찾게된다. 이리하여 율법은 인간양심에 군림하고 인간은 그 노예가 된다. 양심이 평안을 위해 찾는 진정제는 율법만이 아니다. 영생에의 소명을 거부하고 지상에 집착하는 사람에게는 육이, 율법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에게는 자유의 거짓 화신인 죄가, 자유의 모험을 모면하려는 사람에게는 율법이, 마침내 이승살이를 소시민적으로 이어가려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각각 군림하게된 다. 예수는 율법과 육과 죄와 죽음에서 우리를 해방하였다. 자유는 이 해방의 종착점이다. 예수는 나의 자유가 나에게나 남에게 불안의 씨가 되지않도록 행사되기 위한 안전지대에로 나를 해방하였다. 이 안전지대는 예수 자신이다. 『넓다란 터를 마련하시는 분』이라는 그의 이름의 어원적인 뜻이 가리키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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