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자로 원주교구 교구장 지학순 주교는 71년도 성탄을 맞이하여 원주교구 신자들과 교구민들에게 보내는 교서를 발표했다. 『교회는 사회속에 현존하고 사회내에 현존하는 교회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제반 문제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할뿐만 아니라 그 문제들을 해결해야할 책임을 부여받고 있다』함으로써 시작한 이 교서는 한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의 원인을 현 정권 자체에 있다고 지적하면서 특히 정보정치와 부정부패 특권과 외세의존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길은 국민의 기본적 자유권과 생존권을 쟁취하는데 있다고 말하면서 그 방법을 하나 하나 제시하고 있다. 끝으로「맺는말」에서『가톨릭은 공산주의를 배격함과 같이 부정부패를 배격할 것이다』라고 가르치며『두려워말고 우리 뒤를 따르라』라는 호소로써 교서는 끝난다.
교서 전체로 보아서 상당히 많은 교황들의 회칙이 인용돼있고 또한국의 현실에 대해서도 많이 언급되었다. 그 예로 10ㆍ2사태, 10ㆍ15하원탄압, 외화차관, 저곡가 저임금정책 등등이다. 그래서 이 교서가 주는 인상은 상당히 현실적이며 구체적이라는 인상과 함께 대단히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지학순 주교의 교서에는 몇가지 문제점들이 있다. 우리가 이것을 지적하는 이유는 지 주교를 비판하기 위해서 보다 한국교회를 위한 지 주교의 사목자로서의 사랑을 올바로 인식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첫째로는 이번 교서의 시효문제이다. 주교단 공동교서가 11월 14일부로 발표되었는데 불구하고 1개월도 못되어서 주교단의 엄연한 멤버인 주교가 내용에 있어 비록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하드라도 같은 사회문제에 대한 교서를 발표한다는 것은 주교단 내에 의견 일치가 되고있지 않는 표시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어 지적하기 어려운 어떤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교회내에서는 반드시 의견일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그래도 공동으로 행동하거나 발언할 때에는 개인적인 것은 양보할 줄 아는 미덕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둘째로는 교서의 성격문제이다. 교서란 본래는 사목교서라 표현된다. 말하자면 교회를 신앙과 도덕으로 가르치기 위해서 발표하는 글이다. 교서는 신앙과 도덕에 대해서 가르치고 그리고 신앙과 도덕에 입각해서 활동하고 생활하도록 가르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런면으로 볼 때 이번 지 주교의 교서는 교서라기보다 격문으로 느껴진다. 어딘가 선의가 결핍돼 있고 양순하고 겸손함이 결핍돼 있으며 정치적인 요소가 다분히 섞여있다.
교서가 지녀야 할 품위보다 행동을 위한 선동이 앞서는 것이 지 주교의 교서인것 같다. 교회의 사회참여의 필요성은 교회를 한 개의 정치단체나 사회단체로 만드는데 있지 않고 사회의 밑거름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밀가루 속의 누룩의 역할을 해야할 것이다. 교회는 사회를 인도하기 위해 앞장서야 하는 사명을 받지않고 사회가 올바로 되기위해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을 갖고 있다고 우리는 보고있다. 지 주교의 결론에『우리 뒤를 따르라』는 말은 좀 과격한 발언이다.
셋째로는 지 주교의 교서에 구체적인 문제들이 많이 취급돼 있는데 구체적인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비현실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며 구체적인 사건이 포함하고 있는 의도와 내용은 완전히 파악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지 주교는 구체적인 사건들을 취급함으로써 전체적인 의견을 대표하기 보다 일부층의 의견을 대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지 주교의 교서는 모든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는 힘을 상실한것 같다. 더구나 신앙면에서 볼 때 인간이 구체적으로 믿는 것은 모두 다 지나가는 것이고 하느님과 정신세계에 속하는 것만이 참으로 실재적이라는 것을 믿고있는 것이다. 교회는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세계로 향하게 하여야 한다고 생각되며 현실을 현실로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넷째로 지 주교는 현 정부가 종교의 자유를 박탈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적어도 표현상으로는 과격한 것 같다.
물론 종교 자유의 한계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으나 현 대한민국에서 종교 자유가 없다는 것은 우리는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 주교는 교서에서 종교의 자유를 교회의 사회 참여까지 포함한다고 말하고 현 정부는 교회의 사회참여를 저해하고 있다고 전제해서 말한다. 10ㆍ5 데모를 주역한 지 주교가 이렇게 발언하게 된 동기를 우리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만 이러한 발언을 공공연하게 한다는 것은 교회 지도자로서는 삼가해야 할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서 살고있는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이 사회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 교회는 이 사명을 완성하기 위해 현재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차제에 다시 한번 모든 신자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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