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며칠 있으면 성탄절! 해마다 지내는 이 기쁨의 축제가 오히려 원망스러울 사람들도 많이 있겠다. 부재의 허탈과 부용의 현재에서 축제를 지내기 보다 역겨운 것도 달리 없겠기에 말이다. 내게 그렇듯 소중한 이가 없는 이 계절에 그의 기존은 얼마나 덧없는 것이며, 내 곁에 현존하는 그이가 왜 이다지도 견디기 어려울까? 인간이란 정말 치졸하게 끝나고만 하나의 실패작 일까? 있는대로의 우리 자신을 견디어내고 받아들이기란 정말 어렵고 굴욕적인 때가 많다. 인간이란 언젠가는 좌초하기 마련이고 극에서 극을 치닫는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직도 그 의젓한「초인」을 못내 그리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서 생일축하를 받으실 그이는 교회가 읊고 있듯이 동정녀의 태중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우리 인간계로 들어오셨다. 그이는 비좁은 어머니의 태중에, 외세점령이라는 궁경에 허덕이는 조국에, 불행한 시대에, 편협한 이웃에, 무정견한 정치에, 죽음에 단죄된 육체안에, 몰이해라는 감옥에, 노동자의 단조롭기만한 일상생활에, 철저한 실패로 끝난 일생에, 신이 부재하는 황량한 세계에, 죽음의 어두운 밤안으로 찾아 들어오셨다.
그러나 하느님이 몸소 찾아 들어온 이 비좁은 공간에 출로가 없을 수 없다. 하느님이 당신 혼자만으로 만족하시지 않고 우리 인간들 중의 한 사람이 되신 이제, 인간이라는 우리의 존재가 보람없을 수 없다.
하느님이 인간역사라는 희비극을 무슨 희한한 구경거리 처럼 굽어보시지만 않고 당신의 지엄하신 구좌에서 내려오사 우리와 꼭 같이 이 무대위에서 당신 배역을 몸소 진지하게 연출하시는 이제, 이 사극의 종장이 비극으로 끝날 수는 없다.
이렇듯한 하느님의 실재앞에 우리를 그토록 환멸시키고 쓰라리게 하는 이른바「현실」이란 이제 현실 아닌 허실이 되었다. 이 가짜「현실」을 진리로 내 세우는 그 사람이야 말로「지적정직」이라는 이유로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의 비극적 위대성에 도취케하여 황홀경에서 죽게하는 안사법사이다.
그리스도의 강생 이후 순수한 인본주의란 있을 수 없다. 인간은 무한히 인간 이상이기 때문이다. 인간을「과대평가」한 예수는 역시 옳았다. 그분보다 못나지려는 일체의 거짓 겸양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거절하는 인간거부이다. 적어도 이 날 만은「좋아져」보자! 아무런 저의나 조건없이 좋아져 보자! 하느님께서는 몸소 먼저해 보셨다. 까다롭고 여한과 환멸과 분노로 좁아진 우리 마음에「넓은 터」를 마련하시려 했다. 그분의 체험은 우리의 것보다 신빙성 있다. 우리는 우리가 믿고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좋아질 수 있다. 우리의 형제가 되신 그이는「사람 좋아」보이신다. 우리도 남에게「사람 좋아 보인다」는 소리는 들을 수 있을만큼 좋아져 보자! 용서하는 마음, 고요한 마음, 후련해진 마음으로 웃음을 잃은 우리 이웃들을 이 기쁨에 초대하여 우리 다 함께 노래하자!
『하늘 높은 곳에는 천주께 영광, 땅에서는 그의 사랑받는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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