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원 한 장이면「눈깔사랑」2개를 살수가 있었다. 그것도 혼자 독차지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어머니가 어금니로 깨물어 조각낸 사탕조각들은 올망졸망한 형제들의 손바닥 위에 고루 나누어지는 게 보통이었으니까. 깨물어 먹지 않으려는 꼬마들의 입속에서 조각난 사탕들은 안타깝게도 조금씩 작아져갔다. 30·40대 이후 대한국민 사람들이면 거의 누구나 경험해 봤음직한 풍경들이다. ▼젓가락 막대기에 길게 붙은 얼음과자, 아이스케키. 역시 1원이면 2개가 손에 쥐어졌다. 아까워하면서 조금씩 빨다보면 남은 한개는 무더위에 녹아버리고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사이다병 1개면 엿가락도 2개였다. 청량음료수가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 툇마루 밑에 꼭꼭 숨겨두었던 사이다병은 하얀 먼지를 듬뿍 뒤집어쓴 채 어린이의 손에 들려와 엿가락과 바꾸어졌다. ▼곱게 눈 흘기며 꼬깃꼬깃한 1원 한 장을 깊숙한 곳에서 내어주시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알뜰함으로 우리들은 이렇게 컸다. 무엇이든 부족한 시절이었지만 어머니의 치마폭에서 우리는 풍요한 사랑을 먹고 자랐다. 어머니의 검소와 알뜰함을 보면서 우린 몽당연필도 부끄럽지 않았고 종이 한 조각도 함부로 버릴 수가 없었다.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풍요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어린이의 손에 1백만 원짜리 수표가 들려지고 겁 없는 이 조막손이 수십만 원대를 호가하는 장난감을 골라 들었다. 놀란 판매원의 확인 전화에 그 어머니는 오히려 불같이 화를 냈다.『내 돈 내 마음대로 쓰는데 무슨 간섭이냐』고. 이것은 실제상황이다. 이 세상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광경, 과소비풍조가 극을 달리고 있는 하나의 모습이다. ▼한 어린이가 태어나 처음 사용하는 유아용품들도 한 세트에 수십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제대로 교육시킨다며 그 어머니는 걸음마도 못하는 아이를 위해 60·70만 원대의 유아교육자료를 철도 없이 구입한다. 그 어머니의 손에서 자란 어린이의 손이 큰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렇게 나가다간 1천만 원짜리 수표를 손에 쥔 어린이들이 장난감 코너에서 설치는 실제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눈앞이 캄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