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성탄절도 예년과 비슷한 레퍼터리로 끝나간다. 카드 보내기, 선물 주고받기, 부풀어 오른「기분」을 해소하기로 끝나간다. 자정미사도 끝났고 늦잠에서 깨어나는 나에게 이 아침은 오히려 공허감 마저 안겨준다.
거의 다 녹아내린 초가 불꺼진 크리스마스트리 여기 저기에 형해처럼 걸려있고 풀이 죽은 은빛 테이프는 피곤한듯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다.
오색등만이 철면피처럼 그 후안을 번득이고 있다. 이 성탄절의 기쁨을 정작 누려야할 가난한 이들은 교회내외의 박애주의자들이 넉살좋은 인도주의적 표어에 쓴 웃음을 보낸다. 거리에 나부끼는 현수막에 쓰여 있듯이 연말연시를 조용히 지낼수 있는 소시민적 여유는 가난한 서민들의 피수수감을 한층 더 고관해 줄뿐, 축제 이후의 이 시간부터 모든 것은 예나 다름없이 반복 계속하는 듯한 느낌은 어쩔 수 없다. 무엇이 변했는가 질문하면 대답이 얼른 내키지 않는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어보지로 않고 이 성탄절을 마련하셨기에 우리가 이렇궁 저렇궁 여러가지 이론을 내세워가며 우리 자신이 나 우리의 삶에 견해하는 것 이상으로 이제 우리는 신앙할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 우리자신과 우리의 현실을 능가하는 사람, 달리 말하면, 미래를 창조적으로 구축할 수 있도록 해방된 사람, 즉 자유인이 되었기 때문이요 자기책임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고, 하나의 무한한 가능성으로서 우리에게 미래가 하사되었고 이렇게해서 우리는 희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사람들에게는 이 자기초월에의 초대가 달갑기는커녕, 오히려 짐스럽고, 왜 하느님께서 인간들끼리 좋건 싫건 그런대로 살아가도록 버려두지 않고 우리 인간사에 참견하시며 우리를 성가시게 구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홀로 버려진 인간은 스스로의 현존재를 하나의 스캔들로밖에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나의 동의없이 이 세상에 굴러들어온 나의 현존재에 눈이 트이고 거기에 만족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까닭모를 유형을 복종하고 있다는 죄책감, 후회, 원망으로 해서 스스로의 현존재를 주체하지 못하고 할 수만 있다면 인간폐업에 서슴없이 동의할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자기안에 유폐된 인간은 스스로와 화해할 길이 없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이신「나자렛」의 예수를 통하여 우리와 화해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우리 스스로와 화해하셨다. 이 하느님의 선결적 구세경륜을 받아들여 자기를 긍정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 자기초월에로의 초대를 받아들일 수 있을때 우리는 비로소 자기실현을 가기할 수 있다.
하느님이 스스로 인간이 되사 인간을 남김없이 긍정하시고 수낙하신 이 예수 성탄을 축제로 지내는 근본적 이유는 여기에 있다.
스스로의 현 존재를 승인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수낙하고 스스로와 화해할줄 아는 사람이면 이 긍정을 가능하게 하는 현의를 누구라고 이름 부를 수 없어도 그에게는 이미 하느님이 도래하셨고 그러기에 그는 예수성탄을 침묵중에라도 경하할 수 있다. 그는 이미 닉명의 그리스도 신앙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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