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떤 선사가 추운 겨울날 산중 절을 찾아갔다. 날씨는 몹씨 추운데 몸을 녹일 땔나무가 없었다. 그 선사는 법당에 모셔놓은 목불을 도끼로 쪼개서 불을 놓고 몸을 녹였다.
이 웬일이냐, 기겁을 한 주지가 대들어 묻는 말에 대답도 않고 잿더미만 쑤시고 있었다. 노기가 서린 주지가 다시 물으니 그는「진짜부처님이라면 사리(舍利)가 있을텐데 사리가 하나도 안나오는 걸 보니 가짜 부처군」하고 태연하게 대답하더란다. 주지는 깊이 깨달은 바가 있었다니 목불이 본 부처를 가리웠다. 그래서 본 부처보다 이 목불에 더 집착하여 섬겼다 할 수 있다.
××
평화는 성프란지스꼬, 아씨시의 행동기조이다. 한 마을에 다다르니 종이 울리고 사람들은 손에 손에 감람나무가지를 들고 뛰어나온다. 빵을 가져와서 그것을 축복해주면 거룩한 유물로 보존하고저 앞을 다툰다. 누군가 소리를 지르는데『엑체ㆍ일ㆍ산또』(보라ㆍ이 성인을!) 한다.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 너무하지 않는가 했다.
『나에게 주는 존경이나 영예란 마치 교회안에 있는 그림이나 성상에게 하는 그와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느님의 종은 오로지 하느님의 영상에 지나지않기 때문에 마치 살과 피는 나무나 돌과 감은 것이다』했다.
동료 수사(修士) 두 명과 함께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길가에 한 나무를 보았다. 그 나무엔 많은 새들이 지절대고 있었다. 프란치스꼬는『잠간만, 나는 저 작은 자매 새들에게 설교를 하리라』했다. 프란치스꼬의 옷자락에 스칠정도로 새들이 내려앉았다.『나의 자매인 작은 새들이여…』하며 어깨와 팔과 손에 앉아서 하느님 찬미에 부지런하라는 설교를 듣고 있었다. 설교는 끝났다. 그 다음 새들 위에 축복의 십자를 그었다.
평화를 모르면 여기와서 물어보라. 이 얼마나 기막히는 장면인가? 그런데 N성당에 세워진 프란치스꼬 상에는 손을 들고 축복을 하는 팔과 손에 평화의 새들이 어디론가 날아가버린 빈손이다. 의미없는 자태, 예술작품이라 치드라도 낙제작이다. 동양인 특유의 전설이 새겨진 석굴암의 석불은 장엄하고 신비스러우며 대작 대비함을 느끼는 예술의 극치다.
얼마전에 가톨릭문필가 K씨가 찾아왔다. 자기의 주보성인이기만도 아니다.
사연인즉, 새 한마리 백원치고 어깨와 팔과 손에 세 마리값 삼백원이면 평화의 새를 올릴 수 있으니 날아간 새를 꼭 돌려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고 갔다.
진정 얼마의 돈 문제일까? 예술이면 심미의 눈을 구하고 종교이면 지혜의 감동을 구할것이요, 참모습에 어리는 이야기와 침묵의 소리를 들을 것을··· 우리는 과연 의미없는 많은 우상 앞에 집착을 하고있지 않을까? 돌맹이는 돌맹이요, 나무는 나무다.
부처에게는 자비요,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사랑이다. 아씨시 성자이면 평화이지 본체를 망각하면 우상으로 바뀐다. 우상의 본질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은 시간과 공간속에 완결하기 때문에 이름을 가지고 있다. 우상숭배적 관념에 젖은 히브리 사람에게 있어서 이름없는 역사의 신이란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이름없는 신이란(우상)자기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하느님은 히브리사람의 이해에 대해서 하나의 양보를 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이름을 붙여『있는 자 바로 그로다』했다. 하느님 이름을 생각할 경우 어휘가 가지는 중요성은<있다>는 동사의 반과거형이다.
하느님은<있다>고 말하나 신의 존재는 물건의 존재감이 완결이아니라 산과정, 생성이다. 모세에게 대한 하느님의 대답을 의역하면『나의 이름은 이름 없는 자로다』이다. 우상만이 물질이요, 이름을 가진다. 살아있는 신은 이름이 없다.
형상(形相)은 물질이요、물질은 얼마든지 우상을 낳을 수 있다. 종교는 신자들에게 많은 상(像)을 제공하기도했다. 그러나 신자들의 믿음에 그 많은 상이 마음을 어지럽게도 하고 잘못 알면 신은 죽어서 굳은 우상에 망령으로 나타난다. 샤머언의 신통력에 의지하면서 아들, 딸의 복을 빌고 남편의 바람피움을 막아달라고, 아기 낳게 해달라고, 산신각에 목불이나 석불, 혹은 절간이나 교회를 찾아 열심으로 빈다. 그러나 사르뜨로 말마따나 거기에「신은 부제중」이다. 새의한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서 알을 깨듯 우상이라는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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