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박해를 피해「로마」성 밖으로 나가는 도중 문득「로마」성안으로 향해 들어가는「주님」을 만나 한 말은 유명하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에 따르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다시「로마」로 되돌아와 순교를 하게끔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QUO VADIS?」가 유명하다.
교회는 공의회를 통해 교회의 젊음을 되찾아 지니고 있는 힘의 전부를 발휘해서 주님이 맡겨주신 교회의 사명을 다하기로 했고 이미 공의회 이후 많은면에 쇄신과 전진의 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반면에 공의회 이후 왜 교회안에 잡음이 많이 생기고 생각지도 않았고 바라지도 않았던 진울을 교회는 겪어야만 하는지 실로 답답한 일이다. 그러나 공의회의 필요를 느꼈고 공의회를 무난히 성공적으로 이끈 서구교회는 그 자체안에 같은 진통을 겪으면서도 하나씩 둘씩힘있고 굳게 자체 정비를 해나가기 때문에 서구의 신학자들이나 교회는 앞날에 대해서 낙관하고 있지만 우리네같이 전통이 얕고 자주력이 약한 교회는 내적쇄신 작업의 뒷받침 없이 제도의변혁으로써 공의회를 소화시키고 있어 그것으로 오는 부작용과 피해는 서구교회가 겪고 있는 진통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고 느껴진다. 과연 이러한 상태에서 우리는 한국교회의 전망을 어떻게 내다볼 수 있을 것인가? 낙관적이냐? 비관적이냐? 교회의 본질과 창설자「주님」의 보장을 두고 볼 때는 서구교회나 한국교회를 막론하고 비관할 것은 없다. 그러나 역사적인 면에서 볼때 교회는 외적 박해는 그만두고 그 자체내에서 자각과 노력의 결함으로 허다한 수난을 겪지않았던가? 중세의 종말을 고하던「데까당스」시기를 우리는 어찌 보아야할 것이며 불란서혁명과 그 뒤따르는 ANTICLERICALISME의 진통을 얼마나 뼈저리게 치루었고 아직도 그 상처가 가시지 못하고 있는 사실들을 우리는 어떻게 보는가? 공의회는 어느정도 자체의 정비를 믿고 보다 폭넓게 자체의 활력을 현대세계에 펴보리라 생각하고 개신교와의 일치운동, 비그리스도교적 세계와의 대화의 문을 열지 않았던가. 그러나 한국교회는? 어찌해서 교회안에 뜻있는 인사들의 입에서 비관의 소리가 날로 높아가고 있는 것일까? 과연 근거없고 터무니 없는 기우일까?
우리는 오늘 이 시점에 서서 우리가 짊어진 한국교회의 사명을 완수하는데 슬픈 요소들이 있다면『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에서』엄숙히 우리의 자세를 자문해보아야겠다. 우리는 어디로 향해가나? 주님은 우리에게『QUO VADIS?』(너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하고 묻고 계신다고 생각하고. 인간은 역사에서 배운다고하지만 그러나 지난날을 보면 불행한 역사의 추세를 그 극점에 이르기 전에 막은 일은 극히 드물었다. 갈데까지가고 인간은 후회를 하고 재건의 피눈물을 짜냈다. 구약의 역사를 보라. 역대 선지자들의 경종을 얼마만큼 받아들였던가? 주님이「예루살렘」도성을 바라보며 우시던 장면이 애절히 그려진다. 한국 교회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끝>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