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지체 부자유자들이나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자들을 위해 활동하시던 수녀님이 수도복을 벗고 자기를 필요로 하는 그 분과 결혼 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언뜻 생각하면 너무도 아름다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마음한 구석에는 글쎄…? 하고 고개가 갸우뚱해짐은 나만의 생각일까?
신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난 당시 내 주위 모든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학교에 입학했다. 토끼가 밭을 맞추어 행진하고 앞산 뒷산 빨래 줄을 맬 만큼 심심산골에서, 태초 이래 처음으로 도시로 유학(?)을 보내 놓고 잔뜩 기대를 걸었던 녀석이 갑자기 천주학생이가 되어 장가도 안가고 신부가 된다하니 미쳐도 보통 미친놈이 아니라 생각한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상처를 받으신 분은 어머님이셨다. 언제나처럼 많은 말씀은 없으셨지만 내심으로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절망감을 느끼셨던 모양이다. 첫 방학이 되어 까만 양복에 까만 넥타이를 매고 고향에 갔다. 어머니는 냇가 건너 고추밭에서 김을 매고 계셨다. 『어머니!』 하고 반갑게 뛰어 갔지만 고개를 한번 드시고는 계속 호미질만 하셨다. 죄지은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아무 말 없이 호미를 드시고 감나무 밑으로 물러나 앉으셨다. 그리고 고개를 떨구시고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셨다. 『얘야 요즈음 난 살 맛이 없구나! 내 너 하나 잘 되는 꼴 볼려고 이제까지 살아왔는데… 』울고 계셨다. 나도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그리고 생각했다.『지금 나는 정말 잘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지금 그 어머님은 열심한 교우가 되셨다. 행복한 여인이 되어 즐겁게 사신다. 그리고 가끔 가끔 말씀하신다.『신부! 고마워…』어머니의 이 말을 떠올리며 생각한다.『하느님 덕분에 효자가 됐구나』하고.
인간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 하느님만이 사람을 구원한다. 하느님의 사랑만이 모든 조건을 넘어선 행복을 가능케 한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나를 사랑하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게 하기 보다는 하느님만을 사랑하고 하느님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게 해야 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겠는가? 하느님을 알게 해 주는 일-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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