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그렇듯이 나는 어릴때부터 더 많은 본당 신부님들을 거쳐서 자라났다. 그 중에 특히 추억에 늘 그리고있는 분이 세 분 계신다.
한 분은 23년전 포항서 서거하셨다. 다음 분은 6ㆍ25사변때 납북되어 「죽음의 행진」에서 동료 노신부를 등에 업고 가다가 기진해서 운명하신 오 신부님이시다. 나는 1949년 여름 그가 머물고 계신 대서양연안 「방메」 지방의 일벽촌의 본당을 찾아서 1주일을 함께 지내게 되었다. 전쟁과 10년이란 세월이 우리를 갈라놓았다. 자기 고향지방을 찾아온 나의 성장한 모습을 보시고 대견스럽게 여기고 나를 아들자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 지방의 귀족의 거성에로 초대케해 주셨다. 그는 한국에 관한 정세를 소상히 아시는듯 곧 한국에 가야한다면서 「치명하러 갈 것이다」는 말을 던졌다. 그때 나는 뭐 그럴리가 하고 문제시 않고 있다가 그의 비보를 접한후에 그 생각이 나서 그는 어떤 예감이 있었는가 하고 가끔 생각한다.
우리 본당 신부의 동기인 정 신부님은 나의 본당 신부는 아니신데도 이웃본당에서 자주 오시니까 우리들을 잘 아시고 또 나를 자기본당 출신인양 생각하시고 계셨다.
오래도록 소식이 두절되었다. 내가 __해서 광주에 있을때 어떤 경로를 거친건지 두 세번 회송된 편지 한 장이 날라왔다. 거기엔 시와 유모어가 담뿍 풍기며 옛본당 소년을 대한 듯한 필치로 팔도강산을 두루 나를 찾았다면서 편지 받는대로 곧 다니러 오라는 사연이었다. 자기 보좌신부가 휴가로 떠났으니 성모승천전이라 고해성사를 혼자서 다 못받으시는 형편이었다. 그 후로는 제주도로 샘물 줄기 찾으러 갔다. 오시는 길에 내있는 곳에 들려 하룻밤 체류하시고 가신적도 계셨다. 그럴때면 「요술」을 부리며 불려갔다 오는 길이라 했다. 나는 3ㆍ4일 운휴(運休)가 있을때면 예고도 없이 정 신부님께 다니러 간다. 지난 부활전 성목요일 나는 원고준비도 있고 피로도 풀겸 시골을 찾아갔다. 버스창가로 내다보이는 아산평야의 봄은 아지랑이와 벚꽃 복숭아꾳 살구꽃 등이 들과 언덕을 아롱아롱 꽃구름을 이룬듯 몹시 아름다왔다. 물둘레가 내 두배나 되시는 거구의 신부님은 독특한 미소로 나를 반가이 맞아주신다. 긴장과 피로가 여름 하늘 흰구름처럼 시원하게 풀리는듯 그 성당은 뒤에 보리밭 언덕 살구꽃나무에 쌓여있다. 나를 혼자 산책에 내보내면서 이젠 숨이 차서 같이 못간다고 못내 그는 아쉬워한다. 그가 몸소 빚은 포도주와 진흙으로 만든 오븐에 꾸운 구수한 프랑스빵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아신다. 저녁에는 자작의 시를 라틴어 프랑스어 등으로 나에게 신이나서 읊으시고 만족을 느끼시는 모습은 잊을수 없다.
지난 5월 초순 이 신부님은 프랑스로 떠나셨다. 노환이라도 되면 주위사람에게 폐가 되니까 본의가 아니란다. 이제 나는 마지막 나의 「본당 신부」님과도 이별했다.
나의 성장을 지켜보시고 계셨던 이들 앞에서는 나는 이 나이에도 아직 일개의 흥안의 소년인 내 자신의 모습을 보고있다. 나는 마치 이들한테서 고향의 나의 친척과 같은 느낌마저 갖고 있음을 이제사 알게되었다.
지금까지 임성숙씨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이번호부터는 김태관 신부님과 정만교씨가 교대로 집필해 주시겠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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