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주변에는 아직도 나병환자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래도록 그들형제들의 존재를 외면하고 있었다. 멀리 세계를 내다보면 더욱 많은 형제들이 이몹쓸병에 신음하고 있는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발전과 물질문명의 번영은 소비가 미덕이라는 표어까지 만들어놓고 더욱더 나만 잘살기에 급급한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꼴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편안한 자리에서 잠들기 전에 나병촌에서 고독에 울며긴 한밤을 지새우는 형제들을 생각본 적이 과연 몇번이던가. 우리가 식탁을 앞에 놓고 반전축문을 외우면서 나병촌에서 목말라하고 배고파하는 그들 나환들을 생각한적이 일년을 치고 몇번이던가. 우리는 아주 그들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형제만은 만날까봐 겁을 내고 애써 보지않으려고 잊어버리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심경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정체다.
『너희들 형제, 저 나병환자들과 한 식탁에서 식사할 수 없는 사람은 아예 내 앞에 나타날 생각을 하지말라』고 하셨다.『내가 나병을 앓고 있을 때 너 내게 무엇을 했느냐』고 따질 것으로 선언했었고, 네 형제들에게 한 일이 곧 나,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는 일이라고 설명했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권유가 아니요 곧 주님의 명령인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이 명령마저 귀를 막고있는 형편이다. 그러고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노라고 자처할 것인가. 나병균의 진전을 정지시킬 수 있는 것은 과학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병환자를 치유시킬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길은 주님이 명하시고 주님이 본보이신「사랑」밖엔 없는 것이다. 그들 환자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며 우리의 형제이기 때문에 사랑밖엔 더 줄 아무 것도 없으며 그들이 요구하는 것도 곧 이 사랑뿐인 것이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나환자의 수는 많이 줄어들었고 더구나 양성환자는 많지않다. 음성환자, 즉 과거에 병을 앓았던 흔적만을 남긴 우리같은 인간형제들, 그들의 고통과 슬픔은 의학의 문제도 경제문제도 아니고 오직생활의 문제다. 사회생활의 문제며 인간다운 생활을 우리가 같이 하며 인간다운 처우를 우리와 꼭 같이 받아야 한다는 문젯점 하나만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와 같이 장사를 하고 시민생활을 하며 고속버스를 탈 수 있고 다방이나 곡장 출입을 우리와 같이 할 수 있어야 하며 한 집에 같이살아야 한다. 불구가 되어 생활기능에 장애가 있으면 정형 또는 성형수술을 받아야한다. 그들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우리와 마찬가지로 있는 것이다. 이런 운동에 앞장설 수 있는 사람만이 곧 예수님의 형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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