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롭고 화려한 현세적인 것들? 체면이며 감투며 증명서며 인사치레며 돈내음 따위 온갖 거추장스런 겉옷을 홀라당 벗어버리고 하이얀 눈벌을 딛고 헌출히 하늘로 치솟은 겨울나무는 차라리 꿈을 기르는 명상가.
마침 이맘때쯤이면 초저녁부터 남천에 떠오른 옛 그리샤의 거인 오리온과「큰개자리」의 주성 시리우스! 이글타는 그 다섯빛 광론을 속깊이 마시며 미래를 점치는 벌거숭나무는 황야의 은수자인양 팔을 하늘에 펼쳐 열원하는 기도의 자세로 인종을 새김질하는성 싶다. 남들은 낙엽 뒤의 계절을 푸르청청 수놓은 상록수가 좋다지만 나는 무의 경지로 환원한 앙상한 나무에게서 더 철인의 영상을 찾아본다. 날이야 뭐라하는 고고한 자세로 하늘로 발돋음하여 구름장위에 시선을 얹고사는 영성에의 길잡이!
소슬바람 따라 우스스 낙엽지는 늦가을 산길을 걷는 정취도 유별나지만 하늘의 맑은 손길인 짝깔린 백설하의 나림을 서성이며 생각을 구을리는 감회는 쉬는 보람을 만끽하는이만의 영성이기도하다.
저마다가 다투어 하늘에 팔을 뻗쳐 열띠게 점두하는「메카」순례자들의 모습을 거기서 보는가하면 인생의 활무태를 저만치 물러나와 잠잠히 어제들을 더듬는 노을녁의 삶을 또한 느끼며 속으로 속으로? 속으로만 용결하면서 구심하는 구도자의 넋을 발견하는 것 같아, 나는 여러해전부터 겨울철의 휴일 오후면 산을 찾아 앙상한 나무가지 사이로 구름가에 생각을 구울리는 습성이 짙어가면서 있다.
이 같은 나목에의 관심과 애착이 나로 하여금 아래와 같은 시를 낳게하였는지도 모른다.
<겨울나무>
이란 이랑 눈 덮인 발두렁에 생각을 먹고 속으로 쌀찌는 겨울나무
해빛 새로운 날 줄기마다 물기 올라 얼음장 깨고 푸르 싱싱 생각이 망울신다.
내가 본 나목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것은 1951년 1월 종군때 패주하는 고을 쫓아 소백산에 서 본 얼음꽃이다. 설화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으나 미화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설경이리라.
소백산맥 일대는 이때쯤이면 허리를 넘는 적설로 휘덮이기 마련이다. 살을 째는 바람속을 굳을대로 굳어진 백설의 국망봉 능선을 군대삽으로 층계길을 내면서 한발 한발 전진하여 산마루에 이르렀을 무렵 여기저기에 펼쳐진 눈부신 은나무들!
고산지대라 위력을 상실한 햇살을 받아 5색찬연한 수정나무는 정녕 황홀한 별세계의 꽃나무만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철축 진달래 그밖에 잡목의 산나무가 죽은 나무할것없이 등걸이고 가지고 잎이고 온통 얼음막으로 덮씌워져서 그토록 청초하고 고아하고 아름다워 보였던 것이다.
그날밤은 눈구덩 호를 파고 야영하면서 그 미화가지 고목을 툭툭쳐서 얼음을 떨어버리고 밤샘하였지만 그 한길이나 쌓인 백설의 능선하며 마음눈을 뜨게하던 미화는 그 후에도 불감의 인각으로 내 가슴에 새겨진채 지워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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