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전에 어떤 회합에 나갔었다. 그 회합은 칵텔이었고 정식만찬의 차림으로된 제법 정중한 모임이었다. 회석에는 내가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중에도 나와 꼭깥은 옷차림을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꽤 추운날씨인데 쉐터를 입고 나온 사람은 나혼자뿐이었다. 처음에는 좀 이상하게 생각해보았다. 요사이는 이런 모임에 쉐터 입는 것이 에티켈에 어긋나는 것인가?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옆에 있는 무관한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의외에 엉뚱한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가난한 이유였다. 자가용 자동차를 가진 사람은 쉐터를 입을 필요가 없다는것이다. 그러고 보니 거기 모인 손님은 나를 빼놓고는 뻐스를 타고 오신 분도 없는 것 같았다.
이 순간 나는 벌컥 창피하고 부끄러운 느낌을 금할 수 없었다. 이 자리에 내가 공연히 나왔구나 하는「콤플렉스」에 잠시 사로잡혔었다. 그리고 한참이나 지나서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있었다.
이러고 난 뒤에 문득『가난한자는 진복자로다』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머리에 떠올랐다.
이 모임 총중에 내가 가장 가난한 자임은 틀림없는데 내가 과연 진복자인가? 또 내가 진복자로 느꼈는가? 그것은 아니었다.
내가 진복자로 느꼈다면 처음부터 창피하다는 의식은 아예없고 태연자약한 마음의 여유가 있었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달랐었다. 나는 정말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이때까지 말로만『가난한 자는 진복자 운운하는 설교만 하고 있었구나』하고 스스로 장탄식을 마지 못했다. 가난 자체가 좋은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 다만 가난에 대해서 이를 부끄럽게 여기지않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야만 진정 행복자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 알아들어야 하겠다. 백번 그렇게 묵상하면서도 쉐터족으로서 마이카족에 끼어든 순간 평소의 묵상이나 설교가 산산조각으로 깨어져버린 체험을 맛본 나는 다시는 그런 장담은 않기로 결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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