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대중목욕탕에 가는 것을 매우 꺼려했었다. 좁은 도시인지라 벌거벗은 교우를 만나게 되고, 또 벌거벗은 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난처한 만남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않다. 오히려 툭 치고 아는 체를 하는 즐거움을 맛본다. 오늘(10月2日)도 모처럼 동료 사제들과 함께 정구를 치고 대중탕엘 갔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려는데 옆에서 옷을 벗던 한 청년이 말을 걸어왔다. 『어 이거 이복이 아냐?』 누군가하고 돌아서 보니, 20여년 전 헤어졌던 6촌 형이었다. 즉 고등학교 일학년 때부터 2년을 한방에서 지낸 적이 있는 당숙의 외아들이다. 『어 형! 이거 얼마만이야? 그런데 많이 늙었네! 못알아 보겠어… 』 『응 너 몸이 많이 불었구나. 지금 어디서 뭐 하니?』 『나, 가톨릭센터 홍보국에 있어…』 『그래? 거기도 뭐 장가 안가고 그러냐?』 『물론…』 『자식! 참 안됐다. 장가를 안가? 그게 무슨 짓이야…』
진정으로 딱하다는 표정이다.「글쎄 무슨 재미로 사니?」하고 묻고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순간 난 나도 모르게 이렇게 대답했다.
『응! 그래도 참 재미있어…』
서로가 바빠서, 나 혼자 먼저 목욕탕 문을 나섰다. 그리고 생각했다. 「만일 내가 이 생활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살았다면 얼마나 비참했을까?」하고. 11년 동안의 사제 생활…. 행복했고 지금도 즐겁게 살고 있다. 그래서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었다.
『그래도 형! 재미있어…』하고. 그리고 이렇게 대답할 수 있게 하신 하느님께 감사했다.
그렇다 사제는 그 무엇보다도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행복과 기쁨」「즐거움과 희열」을 품고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 고통과 아픔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세상에서 겪어야하는 그 숱한 고통과 아픔을 넘어선, 기쁨과 즐거움을 안고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여인 한명 없는 처량함, 눈먼 자식하나 없는 쓸쓸함, 셋방 한 칸 얻을 돈도 없는 비참함, 아무것도 자랑할 것 없는 무능함……. 이 모든 것을 넘어선 기쁨과 즐거움이 없다면 오늘 난 무척 우울했으리라. 『사내 녀석이 오죽 못 났으면 장가도 못가고 살아야 하는가?』하는 생각에 살맛을 잃었을 것이다.
주여! 감사 합니다. 찬미영광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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