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도 벽두부터 교회를 시끄럽게한 것은 두말할나위 없이 사제 독신제에 관한 논쟁이다. 요사이 우리나라에서 일간지 주간지를 망라한 대부분의 신문들이 가톨릭 교회의 사제 독신제 폐지 가능성에 대해서 제멋대로 보도하고있다. 그중에는 군중심리를 이용해서 호기심을 위주로 기사를 작성한 것도 있고 더 나아가 기자가 종교생활에 대한 숙고와 이해가 부족한 탓으로 외국신문이나 잡지의 내용을 왜곡하여 보도하는 경우까지 있다. 이와같이 사제독신문제가 내용상「톱뉴스」로 취급되게 된 동기는 새해 벽두부터 화란사목 공의회가 이 문제를 들고나온 데에 있다. 이 공의회에서 사제독신제 폐지 여부를 표결에 붙인 결과 대다수가 폐지안에 찬표를 던졌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회의는 토의하는 기관이지 결의하는 기관이 아니며 또 절대로 전체교회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하는한 지방교회의 의견에 불과한 것이다. 또 이 공의회에서 가결한 것은 어디까지나 건의 안에 불과하다는 것도 잊지말아야 한다. 이 회의가 끝나자 전체 교회와의 일치를 가장 중요시하는 화란 주교들은 이 회의의 결과를 교황께 상신한 바 있었고 교황은 2월 1일 사제 독신제폐지안을 일축해 버렸다.
실상 교회의 으뜸이신 교황은 수차에 걸쳐 사제독신제도는 폐지할 수 없는 것이라 강조했다. 특히 1965년 10월 11일 제2차「바티깐」공의회에 보낸 서간과 1967년 6월 24일에 발표한「사제들의 독신」회칙과 지난해 12월 15일 추기경들에게 한 연설에서 교황 바오로 6세는 현행 사제 독신제도를 포기할 수도 문제화할 수도 없다고 했다. 더구나 2월 1일 순례자들에게 한 연설에서는『사제독신제를 폐지하자고 운운하게 된 것은 시대사조가 인간중심으로 되어 신적 요소를 멀리하기 때문』이라고 경계했다.
따라서 이제는 사제독신제를 논하는 것은 교황의 수위권 자체에 대한 논쟁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해를 요구하는 인간인 우리는 왜 이 문제가 대두되었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이며 따라서 맹목적인 추종을 지양하고 교황의 가르침을 알아 듣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사제독신제도가 종교적으로 유해하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다 사제독신제는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하느님의 백성을 모으는데 아주 적합하다고 보며 또 독신생활을 종교적으로 고귀하게 평가한다. 그러면 돼 사제독신제를 폐지하자는 것일까?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로 인간사조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새로운 문화가 생기고 자유를 절대적으로 존중하고저 하며 세속화와 불신사조가 압도적으로 지배하고있다.
둘째로는 교회의 새로운 상황을 들 수 있다. 사제성소가 감축되어가는 현대에 교회는 새로운 사목활동방침을 찾게된다는 점이다. 셋째로는 세계와 교회간의 새로운 연대성이다. 즉 현대는 독신제를 과연 어떻게 알아듣는가 하는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와같이 변천해 가는 사회에서 교회는 사제독신제를 고려할 때 사제독신제와 교회사명과 따라서 사제의 사도적 임무와를 분리 할 수 없다는 것과 사제독신제는 근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제가 독신생활을 하는 것은 교회를 위해서 사도적 임무를 완수하기 위함이며 또 그리스도께 대한 변할 수 없는 사랑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와 사도직을 떠나서 또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을 무시하고 사제독신제에 대해서 말한다면 폐지를 찬성하자는 결론에만 귀착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전제하면서도 지방에 따라 성사를 집행하고 교회를 다스릴 사제가 없을 때는 결혼한 사람이라도 성직자로서의 덕망을 갖춘다면 성직자로 임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교황은 고려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전교지방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고 또 전통적 종교사조에 젖어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사제독신제에 대해서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몇몇 환속한 신부가 있다 하더라도 독신제는 아직도 크게 문제시 되고 있지는 않다. 또 우리나라에선 신자이건 비신자이건 사제가 독신생활을 하기 때문에 교회에 대해 더큰 매력을 느낀다고 하는 사람이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사제독신제 폐지를 찬성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우리 한국에서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적어도 그리스도를 모르며 그의복음도 모르며 교회사명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로서 사제들을 인간적으로 동정하는 데에서 내린 결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래서 우리 한국신자들은 아직도 사제독신제를 옹호해야 할 것이고 사제들이 원만한 독신생활을 영위하도록 기구와 봉사로써 도와야 할것이다. 사제독신은 사제 개개인의 종교적 임무가 아니고 세말로 향해 전진하는 하느님의 사랑의 일치로 향해 가는 온 교회의 영신적 유산인 것이다. 이와같이 사랑의 유산으로 세워진 교회이기 때문에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환속한 사제들에게 대한 애덕실천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을 덧붙여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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