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구름이 만남의 장막을 덮고 야훼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 …그들이 헤매고 떠도는 동안, 낮에는 야훼의 구름이 성막을 덮어 주었고 밤에는 그 구름에서 불이 비치어 이스라엘 온 족속의 눈앞을 환히 밝혀주었다』 (출애 40,34-38). 「성막」은 「만남의 장막」이다. 에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살이를 할 때 야훼의 명령으로 만든 것이 「성막」이다. 성막은 이스라엘백성이 야훼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고 만나 뵙는 거룩한 장소였다. ▼『야훼께서는 이 장막에서 마치 친구끼리 말을 주고받는 듯이 얼굴을 마주대시고 모세와 말씀을 나누셨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다. 말하자면 성막은 야훼께서 당신의 백성을 「알현」하시는 곳이었던 셈이다. 성서를 기원으로 해석한다면 「장막」은 「만남의 장소」이어야한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가까이 우리의 개념은 만남의 장소보다는 「단절의 장소」였다. 열림이 아니라 닫힘의 개념으로 장막은 우리에게 보다 친숙한 용어가 되어 왔다. 소련과 중국을 지칭하던 「철의 장막」「죽의 장막」은 단절과 막힘의 상징처럼 지난 반세기여를 군림해 왔다. 61년 베를린 시민들의 비탄 속에 쌓아올려진 베를린장벽이야말로 단절과 이별, 아니 죽음의 장벽이었다. 무수한 사람들이 베를린장벽에서 죽음과 자유를 맞바꾸었다. ▼그 장벽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차라리 경악이라 표현할 이 사건을 보는 미국과 유럽등 주변국들의 시간은 환영과 우려가 교차하고 있는 것 같다. 2차 대전 당시 유럽의 많은 국토를 군화로 짓밟은 막강한 독일의 모습을 아직도 지울 수 없는 모양이다. 기쁨 속에서도 착잡하기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남들이야 어떤 관점에서보든 독일은 통일을 향한 지름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베를린 장벽은 이제 사실상 뚫린 셈이다. 철의 장막 역시, 그 무거운 자락을 조금씩 걷어 올리려 하고 있다. 한번 꺾이긴 했어도 죽의 장막을 걷고자하는 노력도 좌절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이 시대의 조류다. 사람과 사람사이를 가로막는 장막을 걷는 일 그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몫이다. 장막은 우리가 하느님과 대화하는 만남의 장막-성막으로 족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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