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로 제22회 평신도주일을 맞았다. 평신도주일은 한국교회의 평신도들이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평신도 사도직에의 불림을 보다 공고히 다지는 날이기도 하다.
누차 거론되어온 바이지만 한국 교회는 세계가톨릭교회 사상 유래가 없는 자랑스러운 평신도 선배들의 정신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자발적인 연구와 깨우침으로 믿음을 찾아 얻고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그 신앙을 전수시켜 오늘날 눈부신 교회발전의 밑거름을 이루었다.
현재 한국교회 신자총수는 89년 말 현재 2백70만을 넘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 2백70만 중에서 2백69만여 명이 바로 평신도들이다. 한국의 평신도들이야말로 말로서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하느님 백성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실세」인 셈이다.
그러나 작금의 교회 현실, 사회실상을 보면 이 「실세」가 정작 「실세」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하고 있다. 나이를 먹는 만큼 그 값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평신도 역할문제도 그렇고 어느 한구석도 성한 곳이 없는 듯한 이 사회의 분위기 등 오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이 같은 의구심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양적팽창을 미처 뒤따르지 못하는 질적 성숙문제는 바로 평신도 자신에서부터 원인을 찾아야 마땅하다. 그 정도의 나이에 그만큼의 수치를 자랑하면서 누가 가르쳐주고 키워주기를 기대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 평신도에게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자발적인 공부」다. 우리 신앙선조들이 스스로 연구하고 신앙을 키워갔듯이 평신도 스스로 자신을 성숙시키기 위한 연구와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연구와 공부를 통해 얻은 영성적 풍요와 지식을 이웃과 나누는데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나눔으로써 풍요해 진다는 평범한 진리를 평신도 교육차원에서 일상화한다면 우리 모든 평신도들은 보다 유식해 질수 있을 것이다.
유식함은 삶으로 살 때만이 빛이 날수가 있다. 이론적 바탕이 아무리 풍부하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참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가 없다. 크리스찬들이 그리스도처럼 살지 않는다면 수적 팽창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개신교를 포함, 이 땅의 크리스찬이 날로 늘어가는 데도 폭력ㆍ무질서ㆍ불의 등 온갖 악의 세력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 해주는바가 크다 하겠다.
현세질서를 바로잡는다는 그 현세 속에 몸담고 살고 있는 크리스찬, 평신도들이어야 한다. 평신도 각자가 제대로 살 때 전도된 가치 구겨진 질서는 바로 잡힐 수가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2천 년대 교회를 바로 눈앞에 두고 있다. 2천 년대 교회를 어떻게 맞이해야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는 제22회 평신도의 날 강론자료가 적절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이심을 생활로써 드러내 보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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