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레 나무가 무성한 동리는 인심이 후하게 보이고 가난한대로 나마 구수한 이야기 밤이라도 있을 것 같다. 가지가지의 새들이 모여와 지저귀는 마을엔 왠지 풍성한 인정미가 넘칠 것 같다.
동구밖에서는 아이들이 철없이 뛰놀고 그 또한 참새떼처럼 조잘대는 정경은 참으로 아름답고 병풍에 그려진 평화 같으다.
나무가 드문 드문 서있는 내 집 정원은 그런대로 이따금씩 도망치는 새들이 쉬었다가 간다. 그런데 우리 집 쭉찌(강아지의 이름)는 새들만 보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간헐적으로 짖어댄다. 요즘엔 겨울 나그네 참새들을 전처럼 그리 많이 볼 수가 없다. 농약 묻은 이삭을 줏어먹고 배탈이 나서 많이 죽었거나 공기총에 맞아 죽은 수가 많기 때문에 도시에서는 안심하고 살 수 없어서 멀리 피난을 갔는지도 모른다.
또 쭉찌란 놈이 몹씨 짖어댄다. 필경 새들이 담장에 앉은 걸 보고 짖는구나 하고 무심코 창밖을 내다보니 의외도 한 마리의 큰 새가 나무에 걸려있지 아니한가. 쭉찌의 동무 쫑도 배를 땅에 붙여 놓고포복을 하고 있는 자세이다. 꽁지가 긴긴 한 마리의 공중새는 실이 끊겨 걸려있는 연이었다.
그것은 과연 놀랄만한 사건이었다. 종이새는 바람에 꽁지를 너울거리고 그럴 때마다 쭉찌는 낑낑대며 뒷걸음을 친다. 하늘에는 아직도 서너개의 연이 팔랑거리고있다.
연을 보니 문득 어릴적 시절이 생각났다. 연줄을 잡으면 마냥 하늘을 날을 것 같고 그것이 그렇게도 재미가 있었다. 끝장에는 거의가 나무나 전선에 묶여 마음을 태운다. 어린 동생들도 나만치 연을좋아했다. 아이들은 마음을 저멀리 하늘가에 둥둥 띠우고 싶은 것이다. 닥치는 대로 문종이나 넓다란 종이만 보면 연을 만들어 갖는다.
이러다가 꼬마동생의 수작으로 너무도 엄청난 실수를 저질러 놓고말았다.
어느날이다. 가보(家寶)가 되며 그것이 궁핍할 때는 어마어마한 돈이 될 수 있는 희귀한 보물이 홀랑 날라가 버렸다. 율곡선생의 자당 사임당이 손수 그린 포도넝굴에 버마재비 한 마리가 앉아있는 그림이었다.
그 값진 그림을 참으로 아쉬워하는 아버지는
『요즘 그걸 팔았으면 한살림 밑천이 될 것을…』
『아마 값을 치면 수백만원을 받을 수 있을텐데』
농짝을 뒤진 동생이 연을 만들어 찢어놓은 걸 어떻게 해 볼 재주가 없었지만 동심에 날라가버린 가보는 영영 하늘가로 사라져버렸다.
나무에 걸려있는 연을 보니 다시금 동심에 젖어온다. 동심은 맑은 어른들의 안식처요, 그 세상을 어른들은 죽을 때까지 고이 간직하는 마음의 고향이다.
연들은 나무에 그리고 전선줄에 혹은 TV안테나에 많이 걸려 팔랑거리고있다. 그 아래 길을 지나가는 아이들은 한번씩 위를 치켜본다. 동심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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