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은 雨水. 春眼不覺曉가 본격적으로 실감나는 노곤한 아침들이 이어진다. 멀리서 온 花信은 벌써 봉오릴맺었다는 목련소식 때문에 감미롭고,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는 양 뺨에 달아오른 발그레한 춘기때문에 더욱 다감스럽고…술이 없어도 그 독히기껍기만 하니 이름하여 春醉라고나 할까. ▲그럴싸해서 그런지, 거리를 온통 누비는 인파속엔 뭔가 부시도록 환한 빛남이 있다. 특히 학교를 갖 졸업한 젊은이들이 풍기는 그 살큼한 풋내며 발랄, 어깨를 맛부비며 길 한복판에서 거침없이 까르르 웃어제칠 땐 꾸중보다 우선 자지러질 듯한 쾌열부터 온다. 싱그러워서 좋고 밝아서 좋고, 좋음이 하많아 한정없이 열리는 착함의 넓이. 저마다 조금씩은 상냥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는 절기인가 보다.
▲이따금 만나는 청년들의 침통한 표정이 견딜 수 없도록 어둡게 느껴짐은 그 양극의 대비현상 때문이리라. 후자들에게 있어선 사회라는게 도무지 공포 이상이 아니다. 순수한 신앙속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일수록 무섬증은 거의 치열한 데가있다. 종창처럼 지물지물 곪아가는 밑바닥, 그무질서의 광난을 어떻게 감당해 나가겠느냐고 비관이다. 사실 시련으로서의 악이든, 마귀의 농간이든 악은 영육을 불문하고 넘치도록 도처에 만연되어있다. ▲그러나 그런 청년들에겐 관점의 수정부터 선행되어야겠다. 사회를 악으로만 짜여진 무슨 끔찍한 괴물로서가 아니라 오직 보다 넓은 인간관계장으로만 이해한다면 그토록 우울하진 않을테니 말이다. 인간이란 누구나 그 내부엔 항상「양」과「염소」가 공존하는 것이다. 아무도『잘못하는 자들 때문에 화내지 말지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말일이다. 생을 끊임없는 투쟁이라 부르고 지상의 교회를「전투하는 교회」라 부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니겠는가.
▲『나를 울지말고 네 자신의 죄를 울라』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모두가 곰곰히 이 봄을 봄답게 익혀가야겠다. 보다 광활하고 보다 풍성한 땅을 열망하는 자는 무릇 스스로가 가진 온갖 조잡을 허무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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