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이탈 문제가 크게 논란되고 있는 모양이다. 어느 외지는 상세한 숫자와 다소 민망한 사진까지 나열하며 그 원인을 규명해보려 한다. 풍조가 풍조니만치 우리로서도 무조건 묵살만 할 건 못된다. 사태를 직시할 줄 아는 건강한 눈을 가져야겠다. 교회는 항상「교회자체의 방법」으로 스스로를 보호하지않는가. 어떤식으로 보도가 되건 여유를 잃을 만큼 놀날 이유는 추호도 없는 것이다. ▲성직을 물론 다른 직종들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향이 순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론 악이 돼버렸다는 사례들. 거기에 문제가 되는 것은 우선 적성여부가 아닐 수 없겠다. 선택하기 전에 자아와의 적응도를 얼마나 깊이 숙고해봤느냐에 따라 정착은 확고할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악이 돼버렸다면 애당초에 자기무지라는 결함을 지녔기 때문이리라 ▲둘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일상생활에의 커다란 충실 여부겠다. 내적 투쟁이 실패를 거듭하면 허탈이 올 수도 있고, 이따금은 거센 자폭욕에 시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뤄야 할 가능태로서의 선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어쩐지 너무도 아득하여 현기를 느낄 수도 있다. 이런 순간들을 하위감정이나 본능이 욕구하는 대로만 무작정 분산할 때 위험은 절로 내포되는 것이 아닐까. ▲결국, 중요하나 흔히 망각되곤 하는 전제는 아무도 성직을 강박하진 않았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수도자가 되는 것만이 누구에게나 최상의 선일수도 없다는 점이다. 즉, 일단 정지한 후엔 자기로서 가장 절대한 선을, 다른 온갖 선 가운데서, 온전한 자유로, 즐겁게 택일했다는 긍지를 계속 자각해야 한다는것이다. ▲해야만할 일을 등한히 함으로써 축적되는 잉여「에너지」속엔 기필코 화농균이 침투한다. 오직 그리스도와의 순연한 합일만이 일자를 위해 타자들을 깡그리 생략할 수 있는 과감한 용기의 원천이 아닐까. 곧 실시될 서품재신식의 의의도 결코 다른데 있는게 아니니라. 요컨대, 흔쾌한 긍정으로 나날을 알뜰히 살 줄아는 혜지요, 그 능동적 탄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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