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을 10미터쯤 앞세워 놓고 토끼를 뒤에서 출발시켜보자. 토끼가 10미터 달려가면 거북은 1미터를, 토끼가 1미터 달려가면 거북은 10센티를. 토끼가 또 10센티를 따라가면 거북은 1센티를…또 기어간다. 이렇게 거북은 토끼를 영원히 앞서간다. 이런 이론을 전개한 사람은 고대 철학자 제논이었던가. 사실은 얼마 안가서 토끼가 거북을 앞설터이지만「시간」을 생각하지 않으면 얼핏보아 그럴사한 이론이다.
노동절을 며칠 앞두고 이「얼핏도아 그럴사한 이론」을 떠올리다니 참 맹랑한 연상작용이다. 물가가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오를 때마다 노동자의 생활보장 권익옹호 대우개선 등등 화려한 낱말들이 토끼처럼 날렵하게 깡충깡충 난무하지만 역시「날렵」이「엉금」을 미치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더우기 요즘은 물가가 엉금엉금 기어오른다고 하지않고「치솟는다」고 하지 않는가. 교황 바오로 6세는 등극하시면서 교황청 직원의 봉급부터 30% 인상하신후 노동자의 생활보장을 거듭 호소하고 있지만 그 메아리는 실로 멀기만하다. 그렇다고 교회지도자가 교회의 이상을 부르짖는데 인색할 수가 있겠는가.『수신제가(修身齊家)부터 하시라』는 차거운 메아리가 강하게 울림할 줄 알면서도 교회의 이상을 간단 없이 부르짖어야 하는데 지도자의 고뇌가 있고 십자가의 길이 있으리라. 전교회장 봉급을 1만원에서 1만5천원으로 올렸다고 대견스러워할 사도의 후계자는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일반 기업주들이 제논의 후계자로 전락한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60대의 기업주가 자기의 20대를 회상하며『당시에 나는 지금 여러분이 받는 봉급의 10분1의 정도로 잘 살아왔다』고 으시댄다면 이는 틀림없이「시간」을 잊어버린 제논의 후계자일 것이다. 어쩌면 오늘날의 노사(勞使)관계는「시간」을 잊은 60대와「시간」속에 사는 20대의 관계일지도 모르겠고 교회기관 종사자의 경우는 60대(12월)의 노인과 20대(5월)의 처녀가 결혼하는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촉바른 친구들은『5월과 12월의 결혼을 믿을 수 없단 말이야. 12월은 5월의 풍요와 아름다움을 맛보겠지만 5월은 12월에서 무엇을 얻겠다는건지?』하며 의아해 할 것이다. 이쯤되면 5월도 자신있게 대답해야한다.『12월에는 크리스마스가 있다』고. 그렇다. 춥고 을씨년스럽지만 12월에는 크리스마스가 있다.『여러분은 보화를 하늘에 쌓으십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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