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708호 기사중 다소 주목되는 구절이 있었다.『이젠 마치「섹스」가 가톨릭신자들의 관심의 촛점이나 되는듯 그것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나 떠들어댄다』고 한 히넌 추기경의 말이다. 교황도 도색풍조를 경고하면서 가치있는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특별한 각오」를 촉구하고 있었다. ▲사실「프리ㆍ섹스」의 물결은 근자에 와서 더욱 부쩍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심리적 갈등의 원인을 성적 불만으로 간주한 그 유명한 극단론에 책임의 일단이 있는지 모른다. 어디를 가나「섹스」「섹스」…. 어중중한 군중속일수록 그것만이 유일한 인기종목이다.
▲반면에, 우리는 오래도록 그것을 너무「타부」시 해오기만 했었다. 과도한 은폐 내지 기피는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점 때문에 예기찮은 위험을 내포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상을 그 지닌 가치대로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은 무엇보다 건실한 지식에서 길러지지 않을까. 초극이든 수용이든, 거기에 임하는 근본적인 자세엔 동일한 긍정이 요구되는 것이다.
▲어떤 이는 성욕을 이성 접촉욕+팽창소실욕이라 풀이하기도 한다. 모든 유가 선이니 성욕 자체도 악일 수가 없다. 동시에 그토록 야단스레「떠들어댈」이유도 결코 없는 극히 단순한 구조의 본능이란 것이다. 다만 극감의 쾌미가 직접적이고 찰나적이어서 다분히 중독의 우려를 지닌다는 것이 문제다. 그것이 바로 숱한 무질서와 방종의 원인이 아닐까. 반복될수록 자극의 효과는감소되기 마련이요 그렇기 때문에 항상 새로움을 갈구하게되는 것이 감각본유의 생리인 것이다.
▲「헨리ㆍ제임스」는『사람이 아무것도 하지않을 때 언제고 생각하는 것이「섹스」라』고 설파했다. 보드레에르 또한『남자가 예술에 정진하면 발정하지않는 법』이라 했었다. 의학적으로도 성욕은「전환적 에너지」로 불려지곤 한다. 요컨대, 정신의 청명을 잃지말잔 얘기겠다. 얼마나 범람해대건, 과도히 신비로와할 필요도 없고 과도히 불결해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자기로서의 중심을 항상 확고하게 견지한다면 정결은 그 덤으로 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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