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를 맞아 각 교구와 각 본당에서도 아동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주일학교ㆍ교리반이 시작 되었다. 금년도에 들어서 타교구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서울교구에서는 조직적 교수법을 모색하게 되었고 대구교구서는 주입식 교리교육을 지양하고 새로운 교리교수법을 찾고있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기쁜 일이며 발전하는 교회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연구와 모색의 결과는 단시일 내에 나타나진 않겠지만 적어도 장래를 바라볼 수 있는 일이란 것은 사실이다. 아무쪼록 많은 성과 있길 바랄뿐이다.
그런데 아동 교리교육은 바로 종교교육이며 종교교육은 인간 전체교육이기 때문에 교리교육은 반드시 정서교육이 포함되어야 한다. 정서교육이 포함되지 아니한 종교교육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 정서란 무엇인가. 이희승편의「국어대사전」을 펴보면「사물에 부딪쳐서 일어나는 온갖 감정」이라고 정의가 내려져 있다. 정서교육이라면 이러한 감정을 질서있게 잡아주는 교육일 것이다.
인간은 매일같이 살아가는데 온갖 감정에 부딪친다. 청소년기의 이성에 대한 유혹, 인생 말엽에 당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 타인과의 접촉에서 일어나는 분노, 증오, 고통이 모든 감정이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감정이다. 이런 감정이 격정으로 변하면 의식도 잊고 자신을 통제하는 힘을 완전히 잃어버리며 감정이 지시하는대로 움직이게 된다. 살인ㆍ강도ㆍ강간ㆍ전쟁 모두가 격정의 소산물인 것이다. 우리사회에 청소년 범죄가 범람하는 원인중에 정서의 결핍도 있다는 것이며 정서교육을 떠난 순결교육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감정은 대양과 같아 고요할 때는 형언할 수 없이 잠잠하지만 폭풍이 일어나면 태산같은 파도를 일으켜 모든 질서를 뒤엎어 버리는 것이다. 情意의 교육이란 이러한 폭풍을 미연에 방지할 줄 알고 또 폭풍이 일어났을 땐 휘말려 들지 않고 동요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인간생활에 중요한 것인가.
그러면 정서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인간의 감정은, 즉 사람의 마음은 미에 유혹된다. 미를 감상하는 인간, 미를 맛보는 인간은 개인감정을 잊을뿐 아니라 자기의 존재의식까지도 초월하며 어떤 초자연계를 맛보는 것이다. 그래서 정서교육에는 반드시 미의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종교생활도 미를 창조하는 생활, 즉 예술생활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구라파의 미술사와 음악사와 건축사는 기독교 역사와 떼놓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예술이 종교적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리고 또 종교란 생활자체를 재료로 삼아 미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된 종교인은 아름다운 생활을 하는 사람일 것이고 우리 고유의 말을 빌리면「멋」을 알고「멋」으로 생활을 영위해가는 사람일 것이다. 생활의「멋」이라면, 어떤 이상을 위해서는 자기의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는 이러한 최고도의「멋」을 갖고 살으신 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미의 교육은 바로 정서교육이다. 교리교육에도 미의 교육을 포함시켜야 겠다.
그러나 아동들에게 미를 창조하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미의 교육에는 미를 감상하고 좋아하도록 함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교회 내에는 많은 미가 있어야 한다. 우리 교회의 정서교육의 헛점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요사이 아동들이 부르는노래를 들어보면 대부분이 라디오에서 들리는 유행가들이다. 저속한 유행가를 뜻도 모르면서 언제나 어디서나 불러댄다. 그러나 과연 이런 유행가들이 참으로 아동의 정서교육에 도움이 될까 의심스럽다. 이런 유행가는 마음에 일어난 감정을 풀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더 격화시킬 것이다. 아동이 자라서 청년이 되어 이성에 대한 유혹을 받았을 때 이런 유행가는 순결로보다 유혹에 빠지도록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이런 유행가 대신 아동들을 위해 무엇을 창작해내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교회는 아동들의 정서교육에 전력을 기울여야한다. 물론 구체적인 방법은 교리반 선생들이 모색해야 할 일이고 전문가들이 연구해내어야 할 일이지만 적어도 정서교육을 해야한다는 목적의식과의 무감을 가져야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아무쪼록 금년도의 교리교육은 지나친 이성적인 교리교수법을 지양하고 감정의 교육, 情意의 교육에 중점을 두어야할 줄 믿는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을 원하시지, 우리의 지식을 요구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배우고 있지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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