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려서부터 나랑 늘 함께 다닌 곳이 두 군데이다. 한 곳은 목욕탕이요, 다른 한곳은 성당이지 않니?
네가 두 살 때부터 다섯 살 때까지 그러니까 3년 동안 교리공부를 마치고 주교관 소성당에서 아빠와 그리고 박현서 스콜라스티카 선생님과 오지영 신부님께 영세를 했을 때 너는 유아세례를 받았단다. 나는 긴장해 있는데 너는 네 대부 품에 안겨 계속 자기만 해서 네 엄마와 나는 얼마나 무안해 했는지 모른단다.
아빠의 이상한 고집으로 교적을 옮기지 못하고, 시흥 본당으로 명학 본당으로 장내동 본당으로 때로는 봉천 1동 본당으로 주일마다 떠돌아다니며 어린이 미사를 빠지지 않고 나가지 않았니? 그러다가 이사를 해 안양 장내동 성당에 머물렀지만…
그때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지만 네가 성당에 가기 싫어해, 새우깡도 사서 주고 또 초컬릿도 사주어 가며 널 꼬드겨서 데리고 다니지 않았니? 지금이니 말이지, 주일 아침이 되면 널 어떻게 해서 성당에 데리고 가나 하는 게 걱정이었단다.
「미듬으로 미듬으로 하나가 되리라 미듬으로…」「나는 포도나무요 너희가 가지로다 너희가…」
너는 성가를 배우고 부르기 시작하며 조금은 덜 지루해했지.
그래도 미사가 끝나면 널 기쁘게 해 주려고 안양시장 순대 골목에 가 네가 좋아하는 순대 볶음을 사주곤 했잖니. 너는 아마도 그 맛에 성당을 군소리 없이 따라 다녔을 지도 모르겠구나. 그「대전집」할머니나 아주머니는 좌판에 물건을 마악 꺼내 놓으며 첫 손님이라며 순대와 간을 몇 개 더 주곤 한 것을 너는 지금도 기억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전집에서 요새는 어찌 안 오나 하고 궁금해 여길 것이다.
1학년이 되었는데도 성당에 가서 네 학년 자리에 앉지 않고 늘 내 곁에 있어 주일학교 명단에 오르지도 못하고 말야.
그러던 네가 첫영성체를 한다고 할 때 아빠의 마음은 어떠했겠니? 네가 아마도 아빠가 되어야만 그 기분을 알 꺼다.
네가 첫영성체를 하고 그 다음날 미사 때 아빠는 눈물이 자꾸 나와 어쩔 줄을 몰랐단다. 그날따라 왜 그러니「나는 포도나무여, 너희는 가지로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작은 열매도 맺을 수 없듯이 너희도 내안에 머물지 않으면 그러하리라」 「믿음으로 믿음으로 저 산도 옮기리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바다도 가르리 믿음으로」
모두 네가 곧잘 흥얼거리며 성가를 부르지 않았니? 너도 이상하게 생각을 했는지 성가를 부를 때마다 뒤를 돌아보며 나를 보고 싱긋 웃는 것 같더라. 아빠는 미사를 드리며, 줄곧 눈물이 쏟아져 주체할 줄을 몰랐단다. 성가의 낱말 하나하나가 가슴에 파고 들어와 나는 감당할 수가 없더구나. 미사가 끝나고 너를 보려 일찌감치 수녀원 입구 쪽으로 나오지 않았겠니. 그런데 너는 나를 보며 손 몇 번 흔들고는 곧바로 교리 교실로 가더구나. 『아빠 집에 가.』하고 매달리면 어떻게 하나 은근히 걱정아 닌 걱정을 했는데 말이다. 섭섭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가슴 뿌듯하였단다.
늘 함께 손잡고 너와 또 이웃 친구들과 같이 미사 참례하다가 어린이 미사가 토요일 3시로 옮겨질 때 혼자 잘 나갈까 염려를 했는데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기우였나를 알고는 혼자 부끄러워했단다. 『아빠 이제 엄마도 성당에 나오라고 기도 할꺼야』
첫영성체를 한 날 저녁 네가 한 말이 가슴에 불씨가 되어 아직도 남아 있단다. 예솔아!
1989.11.20. 아버지가
※이번 호부터 매월 마지막 주에는 재미있는 동화나 어린이들에게 유익한 생활이야기를 한 편씩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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