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이 교구청에 근무하는 신부를 세칭「땜쟁이」신부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본당 신부 유고시 그 본당의 미사 땜질이 우리의 업무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본당 신부님께서야 한 번의 부탁이지만 어디 본당이 하나 둘인가? 어떤 경우엔 두 군데 세 군데의 본당이 비어 정신을 못 차리게 한다.
낯선 본당의 미사, 인간적 만남의 기쁨이 없는 미사라서인지 서먹서먹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미사를 마치고 나서의 내 모습은 초라하게 까지 느껴진다. 신부는 신부인데 모르는 신부인지라 어떻게 대해야 될지 모르고 엉거주춤하다가 슬그머니 물러서는 교우들을 보고 있노라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래서 이젠 아예 교우들과 멀리 떨어져 혼자서 조용히 산책을 하거나 빨리 교구청으로 돌아와 버린다. 지난주에는 전주 평화동 성당에 미사 땜질을 나갔다. 그곳 본당 신부가 국가보안법으로 이미 넉 달째 구치소에 가 있기 때문이다. 그날도 역시 아침 9시 미사를 마치자마자 성당을 빠져나와 바로 곁에 있는 완산고등학교 교정을 산책하며 다음 공식미사의 강론을 점검하고 있었다. 아무도 알아보는 이 없는 교정을 천천히 걷고 있는데 순간 어떤「고독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항상 많은 사람 앞에 서있던 「나」-그러나 난 혼자로구나!』하는 생각에 갑자기 맥이 풀리고 모든 의욕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렇게 축 처진 어깨를 하고 두 손을 후주머니에 꽂은 채 한참을 걷다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아침 햇살이 안면을 정통으로 때렸다. 그리고 초겨울 싸늘한 바람이 뺨을 치고 지나갔다. 길 옆 히말라야시다 나무의 휘청거림이 강한 몸부림으로 눈앞을 가렸다. 이때 난 퍼뜩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혼자라니… 네가 어떻게 혼자일수 있느냐? 넌 지금 찬란한 햇살, 차가운 바람, 몸부림치는 나무, 구르는 돌멩이 속에 서 있는 것이다. 즉 하느님 안에 네가 있는 것이다』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의 힘으로 살고 있는 내 모습을 다시 본 것이다. 나는 기뻤고 그날 미사는 항상 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와 감사의 제사로 봉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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