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5일 한국 주교단은 「국법과 양심」이라는 사목교서를 발표하고 인공임신 중절 즉 낙태는 살인행위라는 것을 재천명하고 불임수술 명령은 크리스찬 양심에 위배되기 때문에 비록 국법이라 할지라도 크리스찬은 따를수 없다고 명백하게 가르친다. 이 교서의 가르침은 뚜렷하고 그 내용에 대해서 어느 신자도 의심할 여지없이 따라야할것 뿐이다. 그야말로 교회의 가르침을 시대의 필요에 따라 피력한 교서라고 하겠고 따라서 전체 교회가 이를 읽고 연구하고 실천해야 할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큰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이미 본란(本欄)에서 지적한 바처럼 신자들에게 얼마나 보급 실천되느냐 하는것이다. 교회의 가르침이 신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극히 적다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교황이 발표한 회칙이라던가 새로운 교회의 운동을 신자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많고 또 주교단에서 새로운 교서를 발표하여도 그것을 모르는 신자들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금년 6월10일부터 성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 성년에 대해서 한마디도 신자들에게 언급하지 아니한 본당이 있는가 하면 가톨릭 대학생들의 무의촌 진료 계획 속에 「모자보건과 가족계획 보급」이라는 항목도 끼어있다. 겨우 80만밖에 안되는 가톨릭교회 신자들이 서로가 호흡이 맞지않고 있다. 서로가 믿는 기본적교리는 같다 하더라도 하나의 교회로써 움직여야한 다는 점에 있어서는 아직도 많은 아쉬운 점이 있다.
더구나 교회 자체에 대한 인식도 서로가 많이 다르다. 본래 교회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인 사랑의 공동체이건만 교회를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교회는 천당가기 위한 방법인 성사를 배부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자도 있고 나쁘게는 교회를 생계의 수단으로만 삼는 자도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자세들은 교회의 본연의 사명을 망각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교회가 무엇을 가르친다 하더라도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한 것이다. 한국 주교단은 모자보건법에 대해서 처음부터 반대해 왔다. 그 이유는 교회는 생명을 무릅쓰고라도 생명을 보호해야 할 지상의무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자들은 주교단의 가르침이 현실을 모르고 현실과 위배되는 가르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교회의 존재가치 자체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된다.
그럼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한번 살펴보고 아울러 그 해결책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평상시에 주교와 신부와 신자들 간의 일체감이 약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가톨릭교회의 구조의 근본요소라고 할수 있는 위계제도는 권위만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도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지도력이 수반되지않는 권위는 권위주의를 낳게하는 것이며 따라서 피지도자들에게 무관심을 낳게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지도자들 즉 주교와 신부들은 신자들을 지도하는데 있어서 동등한 입장에 봉사하는 지도를 하기보다 권위로써 이끌어 갈려는 경향이 많은 것은 우리가 다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둘째는 교회가 자기의 사상을 보급하는데 있어 너무 소극적이라는 면을 생각해 볼수 있다. 현대는 매스콤의 시대이다. 매스콤의 활용을 더 과감하게 했으면 한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전달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이번 사목교서 같은것도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몰라도 테레비시간을 산다던지 대일간지의 광고면을 사서 실으면 더 많이 보급될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교서를 공문과 경향잡지와 가톨릭시보를 통해서 보급하는것 만으로는 그 범위가 너무 좁은것 같고 교회 간행물을 읽지않는 신자들에게까지 전달되기는 어려운것 같다.
그뿐 아니라 모자보건법은 가톨릭 교리와 인간존엄성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만큼 이에 대한 반대를 교서 발표 정도로 그치지 말고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을 모색할수 없었을까 생각된다. 예를들어 주교단 전원이 이 문제를 두고 정부요인들과 직접적인 대화를 통해 설득할 수도 있었을 것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셋째는 성직자들의 일체감이 약하다는 것이다. 물론 성직자 각자가 자기가 맡은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고자 하는 것은 좋으나 전체교회와 보조를 같이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직자들의 마음은 항상 개방돼있어야 할것이고 새로운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커야만 할것이다. 아직도 우리 교회는 성직자들의 이해가 바로 신자들의 이해와 정비례하고 있기때문이다. 그런데 성직자가 먼저 주교단의 가르침보다 정부의 법이 신자들에게 더 잘 받아들여진다고 볼 때는 교회의 가르침은 무용지물로 끝나고 마는 것이다.
넷째는 우리 신자들이 아직도 신앙생활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한국교회에서는 신앙과 생활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신자들이 많다. 그것은 신앙교육 자체의 결함에 기인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신앙은 교회와 같이 호흡함으로써 유지된다. 그리고 또 신앙은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교회의 가르침에 순응하지 않는 신앙은 미신이다.
따라서 신자는 생활하기 위해서 항상 교회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할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의 가르침에 관심을 가져야함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신자들의 관심도가 바로 교회의 생명력이 됨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바이다.
이제 母子보건法은 공포되었다. 가톨릭교회의 영향력으로 법을 철회할수 없다면 남은 것은 우리 신자들이 얼마나 충실하게 주교단의 가르침을 따를 것이냐 하는 문제만 남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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