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에는 문패가 없었다. 무관심도 컸지만 문패라도 달만한 대문이 되지 못했다. 이런 집을 우편배달부는 서울 김 서방을 찾아내듯 용케 꼬박꼬박 편지 한장씩을 던져주고 갔다. 그때마다 필시 망할 놈의 집 왜 문패도 없노, 한바탕 욕지거리라도 할테지. 편지는 일면식도 없는 문둥이 시인 Y씨로부터 날라오는 것 뿐이다.
『인생무상이라더니 오늘 이 골짜기에서 생긴 일들을 대강 적어보면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쓰러진 늙은 처녀의 죽엄의 장례식이 있었고 소독냄새 코를 찌르는 서울시의 적십자 표지를 붙인 앰블런스차에 중환자 한 명을 싣고 왔읍니다.
글자 그대로 피골이 상접한 그는 보행도 불능하여 기어다니는 처참한 인생입니다. 과연 그 얼마나 학대받은 인생이겠읍니까? 몇일전에는 환자로서 마약중독자인 모친구는 영등포 어느 물에 빠져 죽었다는 등 이러한 사건들의 자극을 주고 부대끼게합니다』그렇지만 그는 악착같이사람다운 사람으로 살고싶어 한다.『길가는 사람을 보면 이상하여 견딜 수 없읍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마음대로 걸을 수 있읍니까?』한다 그는 다른 환부의 못쓰게 된 수족을 은빛 피리같은 칼날로 마치 자신의 수족을 짜르듯 절단한다.
그러면 나무둥치같이 최후의 체온을 뿌리고 떨어져 나간다.
『이 사람이 그립습니다. 울고싶도록 사람이 그립습니다』그는 잘못태어난 인생을 박탈당하고 절룸거리며 신음하여 고독을 씹고있다. 다만 살고보자는 의지만 가지고 사람다워질려고 몸부림 친다. 인생은 본시 아웃사이더이다. 고독은 대중으로부터 고립해서 산속에서 생각하는 적막을 말하지 않고 대중과의 콤무니케이션 없이 대중의 일상속에 홀로있는 것이다.
릴케는『고독이란 실제로 내부의 문제다』함과 같이 고독자는 아무리인간대열 속에 뛰어든다 하더라도 역시 이방인이다. 일본의 癩시인 明石海人은 칼로 목울대를 베었다. 못쓰게 된 코 대신 마지막 호흡의 연장을 위하여 자해하였다.『스스로가 심해의 어족마냥 소연(燒燃)하며 산다』했다. Y씨는『나는 문둥이 올시다.
그러나 풋내기 문둥이 올시다. 문둥이로서의 진가를 맛보지 못한 문둥이 올시다.』한다. 그들 그 독자는 벌레의 울음소리에도 또한 한송이 꽃으로도 울어버린다.
이 지구상에 산재하고 있는 5백만의 문둥이 그들은 통곡하고 있다. 그러나 저쪽에서 바라보는 이쪽 역시 다를바 없다. 종로네거리에 오가는 행렬 급행차를 타나 비행기를 타나 저마다 외로운 존재이다. 빌딩의 숲「맨허턴」이나「샹제리제」의 거리 혹은 서울의 명동거리 이 비정의 세계에서 아프리카 사막에 사는 사람보다 더욱 고독감에 젖는다.『사막은 당신의 이웃 지하실 속에도 밀려온다.
사막은 당신의 동포 가슴 속에 있다』고 T. S. 엘리오트의 작품「바위」에서 말했다.
애인을 가지거나 처자를 가지거나 그때부터는 변함없는 고독에 싸이고 다만 고독하지 않은체 할 따름이다.
「충만」과「공허」「희열」과「환멸」이렇게 교차되는 지루한 공간에서 그 누군가가 또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린 결코 사르뜨르의 저「구토증」엔 걸리지 말아야한다. 더 건강하게 더 유쾌하게 살자. 벗이여! 지금 살고싶어하는 사람들의 그 소망을 우리가 누리고 있지않는가? 부디 안녕하시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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