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골목길을 걸어 나올 때 이미 그의 죽음이 가까이 있음을 피부로 느꼈다. 그는 죽음의 공포와 용감히 맞서 싸우는 장엄한 투사 같은 모습으로 처고모인 엄마와 사촌처제인 나를 만났다. 아니 모든 병문안 왔던 이들을 내내 그 모습으로 맞이했을 것이다.
현대의학의 어처구니없는 무력함에 아연해 있는 그의 초췌한 모습에서 5년 전 우리가족의 암울했던 한 겨울을 기억해 냈다. 날벼락만큼이나 엄청났던 아버지의 암 선고, 잠만이 유일한 기쁨이었던 그 서러움의 날들. 단지 죽음으로 가기위한 그 치열한 고통을 함께 할 수 없었던 안타까움 아니 그것은 차라리 고통이었다.
나를 위해 무엇이든 해 주시던, 당신을 위해 그저 바라보는 것만이 최선이던 그 가슴 아픔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아무 때나 온다. 언제나 그 죽음은 갑작스럽고 어처구니없다. 가장 살고자 하는 욕망이 치열할 때 정작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있을 때, 바로 그런 때에 너무나 당당한 모습으로 찾아온다. 아무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데….
살다보면 우리들은 가장 자연스럽고 당연한 진리에 소홀해진다. 언젠가 죽을 수 있다는 그 진리를 너무 등한시 하며 사는 것 같다. 마치 무엇에 홀린 듯이 자기 삶에 취해 살다가 허리를 펴고 주위를 좀 둘러보고 싶다할 때 먼저 와서 손을 내미는 죽음.
천주교에 의탁할 것을 조심스레 권하는 어머니 말씀에 『죽을 때가 다 돼 내가 필요할 때 주님을 찾는 건 너무 염치가 없어서, 염치가 없어서…』라며 눈물을 지었다.
주님의 말씀 중 『항상 깨어있어라』는 성서 구절을 가슴깊이 새기며 주님의 은총이 내리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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