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목욕탕에 알몸을 담가놓고 입술을 지긋이 깨물어 보면 세속적인 감정은 어느새 마비돼 버리고 지극히 단조롭고 비율동적인 육체들의 움직임 속에서 풍겨지는 체취에 가벼운 취기를 느끼게 된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꾸며진 것이 없고 있는 그대로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원시적인 분위기에 쌓여진 상황속에서의 일종의 안정감이라고 할까 그러한 기분이 몽롱한 증기에 젖어드는 것을 감각하게 된다. 이런 감정 기분은 백원짜리 공동목욕탕을 즐기는 나의 지극히 서민적인 값싼 향락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 원시적인 안도감을 매우 소중히 생각한다.
알몸만이 움직이고 있는 욕탕의 세계에는 인간에게 운명 지워지다시피된 차별이란 용어의 통용이 부자연스럽게 돼버린 상황하에 질서잡혀 있다. 질서잡혀 있다는 형용이 혹은 어색하게 느껴지게 될지 모르나 그 알몸의 세계에는 누가 누구를 지도하거나 지배하거나 간섭하지 않아도 조금도 혼란의 우려가 없는 단순한 인간만이 노출돼 있는 상태를 의식한다면 이 표현에도 따라서 이해가 갈 것이다.
좀 더 관심깊게 그 상황을 관찰해 볼 것 같으면 그들 육체마다에 세월이 스쳐간 시차의 표지는 있어도 이른바 사회적 속성에서 규격지워진 「인간으로서의 격차」로부터 해방된 자연 그대로의 군상임을 재발견하게 된다. 여기에 대한 인식을 나는 대중욕탕이 아니고서는 체득할수 없는 휴매니즘의 원형으로 부각시켜 보는데 현실적인 흥미를 갖는다. 이렇게 욕탕의 나상(裸像)을 휴매니즘의 실증대상으로 승화시켜 본 까닭은 그 백원짜리 욕탕에 원시적인 안정감이 있다고 한 나의 그야말로 원시적인 감정이 해외에서 수입해온 그 설익은 휴매니즘을 내 나름으로 이해하는데크게 도움이 됐다는 배경 설명으로써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나체들의 군상(群像)은 원시적이지만 거기에는 누구의 군림도 없을뿐더러 한결 인간적(자연적)인 체취가 구애없이 발산하고 있는 까닭에 여느곳에서 가져볼수 없었던 안정감을 맛볼수 있다는 이 상황-이 상황이야말로 상호 허용적이고 개방적인 인간관계의 질서화와 평형화를 통해서 「인간으로서의 안정감」을 보장받으려는 서구적(西欧的)인 행동의식을 이해하고 인식하는데 필요한 교정의 AㆍBㆍC가 아닌가.
동양인들-특히 우리 한국사람들은 서구적인 민주주의와 민주시민 사회의 연대의식을 받침해온 실용철학인 휴매니즘을 때로 열성있게 떠들기는 하면서, 자신의 안정에 집착할 적에는 그 요건을 보편적인 인간관계에서가 아닌 사회(현실)와의 절연상태하에 자신을 고립시키려는 길에서 선택한다. 그것은 인간 체취에 충만된 욕탕이 아닌 어느 외딴 초갓집 골방속에 폐쇄된 「자신의 고고(孤高)」이지 휴매니즘에 바탕한 안정감의 보장 상태는 아니다.
은둔(隱둔)에서 안정을 얻으려는 생활의식이란 극단적으로 말해서 반사회적인 것이며 인간관계에 있어서 지극히 배타적인 「인간 폐쇄주의」로 특징지워 진다.
거기에는 개방사회의 시민의식이나 그 바탕인 휴매니즘의 溫存이 가능해질수 없다. 솔직히 말하거니와 휴매니즘은 서구(西欧)정신을 대표해온 기독교사상의 원천인「사랑」을 통해서 대중의 동질성(同質性) 동격성(同格性)을 인식케 한 사회윤리에 범주하는 것이어서 문화사를 달리한 동양인으로서는 비록 크리스찬일지라도 아직은 보편적으로 소화시켜 내지 못한 상태- 그러니까 우리는 현대, 즉 제4차 산업시대에 있어서도 민주시민으로서는 낙제생을 면치 못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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