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아의 손수건…』강력한 서정을 담고 있는 이 시의 주제는 향수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다. 이 시를 읽노라면 아득하게 멀어져가고 있는 고향、 잊혀져가고 있는 고향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불러 일으켜준다. ▼어머니를 떠올리지 않고는 고향생각은 성립되지 않는다. 어머니와 고향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함수과계다. 고향을 생각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어머니를 오래전에 잃어버린 사람일 게다. 다분히 감상적인 이 고향타령도 40대를 넘어선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세상이 됐다. 그만큼 세월이 변했고 고향관념도 판이하게 달라졌다.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칠만한 고향이 없는 사람도 상당수에 이른다. ▼각박한 인심、 달라진 세상 가운데 어머니란 이미지도 변해버렸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도 지르고 싶은 고향、 그 고향과 연상 작용으로 떠오르는 어머니상이 달라져도 크게 달라진 것이다. 오늘의 어머니는 이미 형성된 생명체、 자기의 분신인 태아들의 「소리 없는 절규」에도 까딱 않는 강심장이 되어버렸다. 수백만 아니 수천만의 태아들이 어머니의 비정함속에 절규하며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생명을 부여받았으니 태아에게도 당연히 「인권」이라는 게 있다. 부여받은 생명을 고이 지켜 이 세상구경을 할 수 있는 것도 태아들의 권리이다. 아직 그 인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을 뿐이다. 수태된 생명을 스스로 죽이는 것은 어머니의 횡포다. 잠시 위탁되었을 뿐인 권리를 마음대로 휘두른다면 그것은 완벽한 「더티 플레이」다. ▼「더티 플레이」를 알면서도 묵인한다면 그 심판은 더욱 몹쓸 사람이다. 현재 우리교회가 못된 심판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모두 다 못된 심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소리 없는 절규」속에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죽고 죽어갈 태아들을 생각한다면 교회의 노력은 역부족이라 할 수 있다. 「비정한 어머니」「못된 심판」이라는 틀을 벗을 때 우리는 참된 인권에 대해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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